정부의 온실가스 규제 근거 없앤 美…트럼프 논리와 재판 전망
2009년 도입한 '위해성 판단' 폐기…車배출가스·화석발전 규제 근간 흔들
美정부 "가장 비관적 모델 의존한 결정…대법 '중대질문원칙'에도 상충"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온 과학적 근거인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폐기했다.
이 판단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온실가스가 미국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응해 EPA가 2009년 내린 결정으로, 이후 자동차와 발전소 등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규제의 근간이 돼 왔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조작"이라 부르며 화석 연료 생산 및 연소를 장려해 왔다. '위해성 판단'이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2007년 4월 미 연방대법원은 온실가스가 청정대기법(Clean Air Act, 1970년 제정)의 규제 대상인 오염물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판결이 나온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만약 온실가스가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위협한다고 판단된다면, EPA는 법에 따라 이를 규제할 의무가 있다"며 "규제를 안 하려면 과학적으로 위험하지 않다는 합당한 근거를 대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정부의 EPA는 과학적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위해성 인정'이다. 이는 청정대기법에 의거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근거가 됐다.
당시 EPA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수소불화탄소·과불화탄소·육불화황)는 공중보건 및 복지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대기오염에 기여한다고 발표했다.
또 강도 및 가능성 측면에서 기후변화는 엄청난 문제이며,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는 청정대기법에 규정된 의미 내에서 공중보건 및 복지에 위해를 가한다고 봤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책의 초점을 화석연료 산업 지원으로 전환해 왔다. 이는 석유·가스 수출을 늘리고 소비자 에너지 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EPA에 위해성 판단의 법적 타당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특히 화석연료 분야에서 "이념적으로 동기화된" 에너지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석탄·석유·가스 산업에 비용을 발생시키는 오염 규제를 완화하려 해 왔다. 리 젤딘 EPA 청장은 민주당 행정부가 위해성 판단을 이용해 "수조 달러 규모"의 규제를 정당화했으며, 이를 되돌리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PA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수십 건의 규제를 폐지해 왔다. 하지만 위해성 판단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조치다. 온실가스 규제의 근거를 없앰으로써 향후 다른 대통령이 기후 규제를 복원하는 것까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젤딘 청장은 '위해성 판단'이 향후 있을 수십 년간 지구온난화를 과대평가한, 결함 있는 기후 모델에 근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2009년 판단은 과학의 가장 비관적인 전망에 의존했다"며 "당시 가정됐던 많은 비관적 전망이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젤딘 청장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많은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취하고 재생에너지가 급증하면서 2009년의 일부 예측은 실현 가능성이 작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여전히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은 약 2.6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부분의 산호초 소멸과 상당한 해수면 상승 등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두 가지 측면의 법적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첫째, 청정대기법은 지상의 사람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더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매연이나 스모그 같은 '국지적' 오염 물질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기 중에 머물며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가스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NYT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20년 전에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으나 대법원에서 참패했다고 전했다.
둘째, 대법원의 '중대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근거로, 의회의 명시적인 허가 없이는 정부 기관이 광범위한 경제적 파급력을 가진 규제를 도입할 수 없기 때문에 행정부의 위해성 판단을 근거로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배기구 배출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 생산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의회의 허가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논리이다.
앞서 미국 대법원은 2022년 EPA의 탄소 저감 정책에 이 원칙을 적용해 제동을 걸었다. 당시 쟁점은 EPA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화력발전소들에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라'고 강제할 수 있는가였다.
대법원은 발전소의 에너지원을 통째로 바꾸는 것은 미국의 경제와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같이 중대한 결정은 행정부가 기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할 일이 아니라, 의회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권한을 부여했을 때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환경 변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대법원에서 실패한 부시 행정부의 법적 논리를 다시 꺼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대법관들이 2007년 대법원 판결을 완전히 뒤집지 않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좁은 청정대기법 해석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EPA의 기후변화 대응 권한을 깎아낼 수는 있다고 본다.
컬럼비아 대학의 마이클 제라드 교수는 "법원이 기존 판결을 뒤집지 않고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의회의 명시적 허가 부족'이라는 EPA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다고 본다. 부시 행정부 시절 EPA 관리였던 제프리 홈스테드 변호사는 이 논리가 "대법관 과반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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