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핵군축조약 '뉴스타트' 만료…세계 군비증강 빗장 풀렸다

트럼프, 中 포함한 새 협약 요구하며 연장 안해…중국은 참여 거부
유엔 "국제평화 중대 순간" 경고…러는 핵강대국 위상 추락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미국과 러시아의 마지막 핵 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5일(현지시간) 만료됐다. 지정학적 경쟁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세계가 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뉴스타트는 지난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당시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해 2011년 발효된 핵 군축 조약이다. 뉴스타트의 협정 시한은 10년이었으나 양국은 지난 2021년 2월 5년 연장에 합의했다.

뉴스타트는 양국이 실전 배치 전략 핵탄두 수를 1550기로 제한하고, 3대 핵 투발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를 총 70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ICBM 발사대와 SLBM 잠수함 등 발사대는 핵무기 탑재 여부와 무관하게 총 800기로 제한한다. 양국은 매년 18차례 현장 사찰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사찰이 중단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뉴스타트의 실효성도 약화됐다.

지난해 1월 바이든 행정부 당시 미국 국무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조약상 요구되는 데이터 제공과 통보 절차를 중단했고, 미국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가 한 해 동안 배치된 핵탄두 수 제한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고, 제한 수치를 소폭 초과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연장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만료되는 것이다. 더 나은 협정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해 3국 간 핵 군축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5년 1월 기준 러시아는 4309개 핵탄두를, 미국은 37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어 전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290개와 225개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의 핵탄두는 약 600개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 핵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핵 군축 조약 체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과 미국의 핵무기 수준은 전혀 같지 않으며, 현 단계에서 중국에 핵 군축 협상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조지아 콜은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새로운 조약을 협상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울 것"이라며 "(새로운 조약 합의를 위해서는) 수년간의 기술적 작업, 신뢰, 외교적 대화가 필요하지만 현재는 그 어느 것도 필요한 수준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 ⓒ 로이터=뉴스1

러시아는 뉴스타트 1년 연장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지만 미국의 무응답에 조약이 만료되자 향후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4일 성명에서 뉴스타트 종료를 알리며 "현 상황에서 우리는 뉴스타트 당사국들이 더 이상 조약상의 어떠한 의무나 대칭적 선언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원칙적으로 다음 조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선언했다.

앞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종말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으며 분명히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CNN은 여유 있는 미국과 대조적인 러시아의 예민한 반응에 대해 뉴스타트의 종료가 전략무기 경쟁에서의 러시아의 쇠퇴를 의미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핵전력 증강 여력이 부족하다.

러시아는 뉴스타트를 통해 핵 강대국으로서 소련 시절의 위상을 마지막으로 유지해 왔으나 이제 미국의 핵전력이 아무런 제약 없이 팽창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자국의 전략적인 위상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은 뉴스타트 조약이 만료되기 전부터 군사력 증강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였다. 미국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트럼프급 전함' 건조를 추진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와 중국의 핵실험 의혹을 거론하며 미국의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도 지난해 9월 전승절 열병식에서 개량형 ICBM 둥펑(DF)-5C와 DF-61 등 핵 전력을 과시하면서 미국과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뉴스타트 만료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력을 형식적으로라도 제한하던 빗장을 풀면서 전 세계의 군비 경쟁을 더욱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콜은 "뉴스타트가 사라질 경우 미국과 러시아는 핵탄두와 발사대를 아무런 제약 없이 증강할 수 있다"며 "이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오판, 사고, 의도치 않은 긴장 고조의 위험을 높일 것이고, 중국이 동등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핵전력 증강을 계속 가속하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CNN은 "뉴스타트의 만료는 러시아와 미국에만 집중됐던 초강대국 간 군비 통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핵 억제력을 제한하려 했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뜻한다"고 평가했다.

미국 핵과학자회(BSA)는 지난달 27일 뉴스타트 만료와 핵 문제 관련 리더십의 부재를 이유로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지난해보다 4초 앞당긴 자정까지 85초 전으로 설정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4일 성명에서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 핵무기에 대한 구속력 있는 제한이 없는 세상에 직면해 있다"며 "국제 평화와 안보에 중대한 순간"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수십 년간 이뤄낸 군비 통제의 성과가 무너져 "핵무기 사용 위험이 수십 년 만에 최고조에 달했다"며 "양국이 지체 없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 검증 가능한 제한을 복원하고 위험을 줄이며 공동 안보를 강화하는 후속 체제에 합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