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무기화' 트럼프는 장난 수준…"中 30년간 600건 치밀"

빅터 차 美CSIS 한국석좌 등 신간…1997년 이후 中 경제적 강압 사례 집대성
韓 주권적 결정 '사드' 보복 대표적…"G7+韓·호주로 나토식 집단억지 필요"

'중국의 무역 무기화'를 출간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있다. 2026.01.2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1997년 이후 중국의 '무역의 무기화'가 어떻게 국가, 기업, 개인의 선택을 압박해 왔는지를 600건이 넘는 사례로 정리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CSIS 팟캐스트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 라이브 행사에서 "중국은 수십 년간 경제적 상호의존을 무기화해 국가와 기업이 자국의 정치적 목표에 따르도록 압박해 왔다"며 "이는 단순한 통상 갈등이 아니라 자유주의 국제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는 차 석좌와 엘렌 김 한미경제연구소(KEI) 학술담당국장, 앤디 림 CSIS 한국석좌 부소장 겸 연구원이 공동 집필한 신간 '중국의 무역 무기화: 집단적 회복력을 통한 저항'(China’s Weaponization of Trade: Resistance Through Collective Resilience) 출간을 계기로 마련됐다.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이 전면에 부각되는 시점이지만, 책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30여 년에 걸쳐 지속돼 온 외교 수단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차 석좌는 경제적 강압을 "비시장적 메커니즘을 동원해 무역을 무기화하고, 타국의 주권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로 정의했다.

그는 "경제적 강압은 즉각적인 정책 철회를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공포와 자기검열을 만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며 "그 결과 국가들은 인권, 민주주의, 영토, 안보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점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된다"라고 짚었다.

실제 사례로는 한국과 호주가 언급됐다. 토론에 참여한 베서니 앨런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중국조사 책임자는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이 관광, 문화, 유통,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비공식적 압박을 가한 점을 대표적인 경제적 강압 사례로 꼽았다.

앨런 책임자는 "사드는 한국의 주권적 안보 결정이었지만, 중국은 이를 문제 삼아 한국 사회와 기업 전반에 비용을 부과했다"면서 "이후 한국이 다른 안보 현안에서 신중해지는 효과를 낳았다"라고 말했다.

호주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20년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은 호주산 보리와 와인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통관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책의 특징은 이러한 사례를 글로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차 석좌와 집필진은 1997년 이후 공개적으로 확인 가능한 중국의 경제적 강압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600건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대상은 18개국과 470개 기업에 이르며, 초기에는 티베트 관련 할리우드 영화 차단 같은 문화 분야에서 시작됐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책은 또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경제적 강압을 행사하는지와 함께, 중국 스스로가 가진 무역 취약점도 분석한다.

연구진은 중국이 특정 품목에서 특정 국가들에 매우 높은 수입 의존도를 보이는 사례를 추려냈다.

예컨대 태양광 패널 제조에 쓰이는 실버 파우더(silver powder) 역시 일본, 미국, 대만 등 일부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여러 국가가 동시에 움직일 경우 중국 역시 비용 발생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방식 차이도 언급됐다. 멜라니 하트 애틀랜틱카운슬 글로벌차이나허브 책임자(전 미 국무부 중국 담당 선임자문관)는 "미국의 관세 정책은 옳고 그름을 떠나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반면, 중국은 조치를 의도적으로 은폐해 법적 대응과 국제 공조를 어렵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관세를 공식 부과하지 않고 통관 지연이나 행정 절차를 이용해 압박하는 방식으로 부인 가능성을 남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차 석좌는 '집단 경제 억지'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5조와 유사하게 한 국가가 표적이 될 경우 여러 국가가 함께 대응하는 구상이다.

차 석좌는 주요 7개국(G7) 국가들에 한국과 호주를 더한 협의체가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이러한 구상은 정치·제도적 장벽이 크다. 국가 간 이해관계 차이, 기업 참여 문제, 국내법 정비 등 현실적 난제가 적지 않다.

이 책이 비교적 빠른 시점에 출간된 배경도 행사에서 언급됐다. 미 조지타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기도 한 빅터 차 한국석좌는 한 외교·안보 전문 학술지에 관련 내용을 투고했을 당시 중국 관련 논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드물게 즉각 게재 결정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데이터로 체계화하고, 억지 전략이라는 새로운 틀로 제시한 점이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동시에 주목받았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무역 무기화:집단적 회복력을 통한 저항'을 출간한 빅터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있다. 2026.01.21 ⓒ News1 류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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