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키멀 라이브' 후폭풍…트럼프의 미국 '표현의 자유' 시험대

트럼프 행정부, 비판 목소리에 칼날…유명 토크쇼 취소 파장
"심야 토크쇼, 표현의 자유 상징"…'권위주의 확대' 유럽도 주시

9월 22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내 '지미 키멀 라이브' 제작 스튜디오 인근에서 열린 프로그램 중단 조치 항의 시위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라'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5.09.22. ⓒ AFP=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이 정부가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세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ABC의 간판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의 복귀 에피소드 오프닝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1일 자정 기준 영상의 조회수가 2200만 회, '좋아요'가 140만 회를 각각 기록한 가운데, 이 댓글은 12만 회 이상의 '좋아요'를 받으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난 2월 JD 밴스 부통령이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유럽은 그들의 훌륭한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잃고 있다"며 유럽 내 미디어 규제와 온라인 혐오 발언 규제, 이민 문제 등을 공개 비판했던 일을 끄집어내 되받아친 것이다.

그로부터 7개월여 뒤, 정작 '수정헌법 제1조'로 대표되는 미국의 표현의 자유 정신이 시험대에 올랐다.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31) 피격 사건에서 마가(MAGA) 진영의 태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미 키멀 라이브!' 방영이 중단된 사태가 계기가 됐다.

시민단체·대학 다음 타깃은 '정치 풍자 쇼'…여론 반발에 제자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복귀 이후로 행정부 기조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들의 활동 내역을 검열하고 해산까지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대학가 친 팔레스타인 시위를 지지하거나 시위에 참여한 외국인 유학생들의 비자를 대거 취소하고 추방했다.

또 친 팔레스타인 시위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컬럼비아대를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을 중심으로 연방 지원금과 연구 자금을 전격 동결하거나 삭감했다.

트럼프식 '입틀막'을 두고 고조된 문제 의식은 '지미 키멀 라이브' 방영 중단 사태를 계기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하는 CBS의 간판 토크쇼 '레이트 쇼'의 종영이 발표됐을 때도 외압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렌던 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지역 방송사에 방영 중단을 압박했다는 점에서 이번 지미 키멀 사건의 파장은 더 거셌다.

배우 마크 러팔로, 페드로 파스칼,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지미 팰런, 첼시 핸들러, 로지 오도넬 등 코미디언 600여명도 연대해 방송 폐지가 부당하다는 서명 운동을 진행했으며, 디즈니 불매를 독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결국 ABC 모회사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비판 여론에 백기를 들면서 키멀은 스튜디오로 복귀할 수 있었다.

디즈니 경영진은 트럼프 행정부 차원의 보복 조치가 들어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률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있다. FCC가 자사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좌시하지 않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단체 '자유포럼'(Freedum Forum)의 케빈 골드버그 부사장은 "FCC는 TV와 라디오를 규제할 권한이 있지만 여전히 수정헌법 1조를 준수해야 한다"며 "ABC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개별 방송국에 대해, 디즈니나 ABC에 대한 허가 취소 또는 규제 조치로 위협하려는 정부의 발언은 위헌적인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ABC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 편성이 복구된 첫날인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팬들이 녹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다. 2025.09.23. ⓒ AFP=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단순 쇼 아닌 표현의 자유 상징"…유럽 언론도 주시

이번 취소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한층 심각한 데는 까닭이 있다. 심야 토크쇼는 수십 년 방송 경력의 노련한 진행자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보호막 아래 정치적 의제를 아낌 없이 펼쳐 보일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도 해 왔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전설적인 진행자 고(故) 자니 카슨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비서가 '녹음 테이프 일부를 우연히 지웠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모세가 '8계명'만 가지고 내려왔다고 하면 믿겠는가"라고 풍자한 일화는 유명하다.

사건의 당사자였던 키멀의 복귀 에피소드 오프닝 멘트 또한 심야 토크쇼를 사랑하는 미국 시청자들의 시각을 압축해서 보여 준다. 그는 "우리 쇼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한 나라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는 "미국의 심야 토크쇼 진행자들은 미국 표현의 자유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며 "미국에서 정치적 풍자가 압력에 굴복할 수 있다면, 그 전통이 약하고 보호 장치가 훨씬 부족한 나라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잃고 있다'고 비판을 받은 유럽도 이번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독일 언론인 노조(DJV)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명에 정치적 영향력이 가해지는 것은 경고 신호"라며 "경제적·정치적 압력이 언론과 방송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영 중단을 환영하며 자신과 자신의 대통령직을 겨냥한 비판적 발언에 대해 추가적인 탄압을 시사한 발언을 하자,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권위주의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