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첫 공동제작 '리골레토' 베이징 녹였다…'한한령' 속 교류 꿈틀

4월 대구 첫선 후 中국가대극원 막 올려…김한결·장원친 등 양국 배우 호흡
기획부터 제작·배급까지 협업…내년 수교 35주년 앞 문화교류 확대 기대

한중 공동제작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을 앞둔 17일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 무대에 작품명이 비춰지고 있다. 관객들이 객석에 자리한 가운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2026.9.17/뉴스1 ⓒ 베이징=노민호 특파원

(베이징=뉴스1) 노민호 특파원 = 한국과 중국의 공연예술기관이 기획부터 제작·배급까지 함께한 첫 공동제작 오페라 '리골레토'가 베이징 심장부인 중국국가대극원 무대에 올랐다.

지난 4월 대구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이 약 5개월 만에 무대를 중국으로 옮긴 것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중국국가대극원(NCPA)이 기획부터 무대·연출·기술, 제작과 배급까지 함께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이를 대한민국 오페라 역사상 중국과 함께한 첫 공동제작·배급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중국국가대극원 역시 한국 예술기관과 진행한 첫 '심층 공동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중 공동제작 오페라 '리골레토'.(주중한국대사관 제공)
대구서 베이징으로…한중 첫 공동제작 '리골레토'

17일 찾은 국가대극원에서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선율을 따라 광대 리골레토와 그의 딸 질다의 비극이 펼쳐졌다.

1851년 초연된 '리골레토'는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은 즐긴다'를 원작으로 한다. 16세기 가상의 만토바 궁정을 배경으로 궁정 광대 리골레토가 하나뿐인 딸 질다를 지키려다 비극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사랑과 복수, 엇갈린 운명이 만토바 공작의 '여자의 마음', 질다의 '그리운 그 이름' 등 널리 알려진 아리아와 맞물리며 극을 이끈다.

한중 첫 공동제작 작품으로 리골레토를 고른 데에는 양국 관객 모두에게 친숙한 작품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황보란 대구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날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한국과 중국 간 첫 번째 합작인 만큼 어느 한 국가에서만 유명한 작품보다는 양국 국민이 모두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중 공동제작 오페라 '리골레토'.(주중한국대사관 제공)
김한결·中장원친 한 무대…기획부터 제작·배급까지

무대 위에서도 양국 성악가들이 호흡을 맞췄다.

이날 공연에서는 한국 바리톤 김한결이 리골레토 역을 맡았고, 중국국가대극원 소속 소프라노 장원친이 딸 질다를 연기했다. 테너 왕충은 만토바 공작, 베이스 관즈징은 자객 스파라푸칠레로 무대에 섰다.

김한결과 장원친은 지난 4월 대구 공연에도 같은 배역으로 참여했다. 대구에서 함께 만든 무대가 출연진과 제작진의 호흡을 이어 베이징으로 건너온 셈이다.

이탈리아 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무어가 연출한 이번 작품은 대형 LED 스크린과 디지털 영상을 활용해 고전 오페라에 현대적인 무대미학을 입혔다. 화려한 궁정의 공간과 인물의 욕망과 불안, 비극으로 향하는 분위기도 영상과 조명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공동제작은 단순히 한국 성악가가 중국 무대에 서거나 상대국 작품을 초청하는 기존 교류와도 차이가 있다. 양국 공연기관이 작품을 만드는 단계부터 참여하고 하나의 프로덕션을 대구와 베이징 무대에 차례로 올렸다는 점에서다.

양 기관은 2025년 전략적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뒤 공동제작을 추진해 왔다. 이번 공연은 '2025~2026 한중일 문화교류의 해'를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추진됐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이어진다. 16일부터 닷새간 매일 한 차례씩 모두 5차례 무대에 오른다.

한중 공동제작 오페라 '리골레토'.(주중대사관 제공)
'한한령' 속 교류 꿈틀…수교 35주년 '르네상스' 기대

이번 공연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한중 문화교류가 여전히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 이후 한국 가수들의 중국 본토 공연과 한국 문화 콘텐츠의 현지 진출은 상당한 제약을 받아왔다. 올해 들어서도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 시장에 과거 수준으로 복귀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클래식 공연인 이번 리골레토 공동제작을 곧바로 '한한령 해제'의 신호로 연결하기에는 이르다. 그럼에도 양국을 대표하는 공연기관이 하나의 작품을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 한국과 중국 무대에 차례로 올렸다는 점에서 문화예술 교류의 공간을 넓혀가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17일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한중 공동제작 오페라 '리골레토'와 관련해 베이징 특파원단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6.9.17/뉴스1 ⓒ 베이징=노민호 특파원

한국에서는 K팝 등 대중문화의 중국 본토 공연 재개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노재헌 주중한국대사는 가능한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교류의 폭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노 대사는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중문화 교류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외에도 가능한 문화교류는 굉장히 많다"며 "두 정상이 문화교류에 대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늘려 나가자는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최근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이 같은 교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이달 5~6일에는 국립극단의 연극 '태풍'이 제30회 베세토연극제 일정으로 베이징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특히 내년은 한중 수교 35주년이다. 노 대사는 "공연과 전시, 콘텐츠 제작 등에서 많은 협력과 논의를 해 내년 수교 35주년을 계기로 한중 문화교류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한령 해제라는 큰 변화까지는 갈 길이 여전하지만, 대구에서 시작해 베이징으로 건너온 리골레토가 내년 수교 35주년을 앞두고 한중 문화교류 확대의 의미 있는 시작이 될지 주목된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