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이 드러낸 中석유파워…세계 에너지시장 영향력 커졌다"

NYT "석유 구매 23% 줄이고도 멀쩡…청정에너지·석탄·전기차 등 대체 구축"
"막대한 정유능력으로 석유제품 수출 제한하며 힘 과시…OPEC 약화와 대조"

중국 국기 '오성홍기'.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김경민 기자 = 이란 전쟁은 오랫동안 석유 공급 충격에 취약했던 중국이 약점을 예상 밖의 지정학적 힘의 원천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중국은 그동안 막대한 양의 석유를 비축하고 추가 정유 능력을 구축했으며 청정에너지나 석탄 등 대체 에너지원에 투자함으로써 큰 변화를 이뤄냈다. 또한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주변국에 대한 항공유·휘발유·경유 공급을 끊으면서 힘을 과시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중국 같은 수입국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같은 산유국이 대부분의 주도권을 가져 왔던 세계 에너지 산업에 큰 의미를 갖는다.

이미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전기차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에너지 산업 전반에 유례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세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막대한 석유 비축량과 정유 능력에 다양한 에너지원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덕분에 이란과의 전쟁 첫 6개월 동안 석유 구매량을 전년 동기 대비 23% 줄일 수 있었다.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다른 나라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거나 훨씬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중국이 석유 수입량을 대폭 조절하면서도 자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석유업계 거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통항을 크게 제한한 뒤에도 국제유가가 에너지업계 경영진과 분석가들이 예상했던 만큼 크게 오르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골드만삭스에서 석유시장 연구를 이끄는 단 스트루이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국제유가는 중국이 전쟁 이전 수준의 구매를 계속했을 경우와 비교해 배럴당 약 10달러 낮았다.

에리카 다운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는 누구도 중국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힘"이라며 "앞으로 중국이 새롭게 갖게 된 이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지켜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이 보인 행동만 보더라도 중국이 에너지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중국은 해외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 정유국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이란 전쟁 초기 중국은 국내 공급량을 보전하는 동시에 중국의 외교정책과 대립하는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해 휘발유와 경유 같은 정제유 수출을 대폭 제한했다.

공급이 빠듯했던 올봄엔 중국이 수출한 소량의 물량은 주로 베트남이나 태국처럼 베이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로 향했다. 반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어온 호주나 필리핀 등은 공급에서 제외됐다. 이러한 조치는 자석이나 컴퓨터 칩 제조에 쓰이는 희토류 수출을 중국이 제한했던 사례를 연상시킨다.

중국이 독특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세계적인 대규모 석유 구매국인 데다, 권위주의 정부가 민주주의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없는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산유국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부에 균열이 생기면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올해 중국의 석유 수입량이 급감한 데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반영돼 있다. 먼저 중국이 더 이상 석유 비축량을 늘리지 않고 기존 비축분 일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중국 정유업체들이 원유를 휘발유·경유 등 연료로 정제하는 규모를 크게 줄였다.

이는 중국의 석유 수요가 크게 약화한 데 일부 원인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운행되는 승용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은 약 14%에 달한다. 이로 인해 2분기 중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은 승용차·트럭·버스가 모두 휘발유나 경유 차량이었을 경우보다 150만 배럴 적었다. 이는 세계 전체 석유 수요를 1% 이상 줄이는 효과를 냈다.

중국은 탄탄한 고속철도망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흔치 않게 석유 대신 석탄을 원료로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담당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메건 오설리번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큰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수요 측면에서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중국에 찾아가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 그러한 행동을 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m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