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첨단부품 밀수기지로 日 활용"…日 '스파이 천국' 됐다
위장기업으로 日기술·부품 조달…우크라 공습 러 드론·미사일에 활용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러시아가 서방 제재를 피해 일본에 스파이 거점을 세우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군사 기술과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 정보기관의 전·현직 당국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일본 도쿄에 정찰총국(GRU) 산하 비밀 정보조직 '제20국'을 두고 있다. 부대원들은 외교관이나 사업가로 위장해 군사 기술을 구매하거나 훔쳐 러시아로 밀반출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 당국자들은 GRU 소속 베테랑 장교 막심 블라디미로비치 필첸코프가 러시아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해 제20국의 도쿄 작전을 총괄하고 있다고 NYT에 전했다.
2024년 부임한 필첸코프는 일본에서 러시아로 물품을 보내는 물류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제3국을 경유해 러시아군의 무기 생산에 필요한 첨단 장비, 공작기계, 기타 부품을 은밀하게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에어로플로트의 현지 파트너사 '프로코에어'는 필첸코프와 협업하며 지난 3월 운송장에 '의료 장비'로 기재된 물품을 러시아 제약사 '알팜'(R-Pharm)에 우회 수출했다.
프로코에어 측은 "제재 대상자에게 고의로 운송을 주선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알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의 제재를 받는 크렘린궁 연계 기업이라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을 계기로 서방 국가에서 요원 수백명이 추방당하자 일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론전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러시아군은 드론 생산을 위한 첨단 부품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러시아로 밀수출된 일본산 부품과 기술은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공격을 위한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등 첨단무기 생산에 투입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드론·미사일의 90%에 일본산 부품이 포함돼 있다고 추산한다. 이 중에는 NEC, 파나소닉, 도시바 등 주요 대기업들이 제작한 부품들도 있었다.
지난 5월 키이우의 고층 건물을 타격해 최소 24명을 숨지게 한 Kh-101 순항미사일 잔해를 조사한 결과 러시아 수출이 금지된 일본산 컴퓨터 모듈이 유도 기능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본 외무성에 공식 외교 서한을 여러 차례 발송하며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허술한 간첩죄 관련 법률이 일본을 러시아 스파이의 온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도쿄 경시청은 러시아 위장 요원에게 구두로 영업 비밀을 유출한 전직 공작기계 제조업체 직원을 송치했다. 경시청은 정보 유출의 중대성에도 간첩죄 관련 법률이 미비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요원은 이미 출국한 상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영향으로 그간 중앙 정보기관이 부재했다는 점도 일본이 '스파이의 천국'(spy paradise)이라는 오명을 쓴 이유 중 하나다. 일본은 지난 5월에야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으로 불리는 국가정보국 설치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일본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국제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폭거"라며 일본 정부가 서방 동맹국들과 협력해 러시아의 군사 관련 물품 수출을 금지해 왔다고 밝혔다.
NYT는 "일본의 취약한 간첩죄 관련 법률과 번창하는 첨단 기술 산업은 일본을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위한 중요한 기지로 만들었다"며 "러시아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일본 등에서 획득한 기술에 계속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jwle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