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면 그냥 좋다?…팬덤 정치의 경고[최종일의 월드 뷰]

일본 집권 자민당의 총재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일 나가노에서 열린 중의원 선거 유세에 참석했다. 2026.02.02 ⓒ 로이터=뉴스1
일본 집권 자민당의 총재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일 나가노에서 열린 중의원 선거 유세에 참석했다. 2026.02.02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일본에서 일상적 문화현상이 된 오시카츠(推し活·덕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최애의 대상은 아이돌에서 시작됐지만 게임 캐릭터, 버츄얼 유튜버, 역사적 인물, 생활용품 등으로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경쟁적이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긍정적 감정을 채워준다고 한다.

이 오시카츠가 정치와 만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의 취향과 감정에 머물던 응원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될 때,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 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열풍'이 지난 8일 중의원 선거에 남긴 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의석의 68%를 가져가는 역사적 대승을 거뒀다. 중의원에서 단일 정당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한 것은 전후 처음이다. 조기 해산의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취임 3개월여 만에 성과도 없이 선거를 치르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리수라는 우려는 '다카이치면 좋다'는 표심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례적인 결과의 배경에는 70%를 웃도는 다카이치 총리의 높은 인기가 있었다. 요미우리신문은 "경제 성장을 실현하고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총리에게 유권자들은 '무언가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정치인이 기대를 받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 기대의 내용이었다.

도쿄신문은 투표일 전에 다카이치 총리 지지 의사를 밝힌 유권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좋은 일본을 만들어 줄 것 같다", "무언가 해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대부분이었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실적을 언급한 경우는 드물었다. "할 말을 시원시원하게 한다", "흔들림 없는 느낌이다",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인상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일본 중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7일 도쿄 선거 유세 행사장에서 한 여성이 자민당의 총재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결혼사진이 담긴 부채를 들고 있다. 2026.02.07 ⓒ 로이터=뉴스1

특히 닛케이는 이번 선거에서 정책 논쟁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사나에를 응원한다'는 오시카츠뿐이었다고 언급하면서 "역경에 처한 히로인(여성 영웅)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이 커질수록 '불쌍하다'는 감정이 작동돼 덕질은 오히려 가속화되는 무적의 구도가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실제 선거 막판, 다카이치 총리가 시작 직전 TV 토론회에 불참하면서 논란이 일었지만 변수는 되지 못했다. 경제 매체 프레지던트는 "류머티즘 지병이 재발해 건강 이상설이 돌았지만,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아픈데도 열심히 하는 총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동정 여론이 형성됐다"고 전했다. 비판은 지지를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책은 이 과정에서 실종됐다. 일본경제신문사와 테레비도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꼽은 정책 과제는 물가 대책이었다. 엔화 약세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임금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일본인들의 생활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유세에서 "엔화 약세는 수출 산업에 기회가 됐고 외환특별회계 운용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엔저 용인' 발언을 했다. 이에 여당 측이 해명과 진화에 나서야 할 정도로 논란이 빚어졌지만, 표심에는 영향이 없었다. 지갑이 얇아지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의 원인을 옹호하는 정치인을 '나를 구해줄 히로인'으로 여긴 셈이다.

문화연구가 다카노 구미코는 소셜미디어(SNS)에 "선거가 아이돌 팬덤처럼 '열심히 하니까 응원하고 싶다'는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며 "정치와 아이돌은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정치평론가 후루야 쓰네히라는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정보를 접하며, 정책 비교가 아니라 '왠지 좋아 보인다'는 분위기로 지지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오시카츠 선거'는 일본에만 있는,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팬덤 정치에서 유권자는 시민이 아니라 팬이 된다. 팬은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이 순간, 정책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권력에 대한 견제는 느슨해진다 '누굴 좋아하는가'보다 '무엇을 하려는가'를 묻지 않는 선거가 반복되면, 그 대가는 결국 유권자 자신에게 돌아온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