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일본 총리, 13년 만에 '반성' 언급…침략 책임은 외면(종합)
아시아 주변국 피해 언급 없어…중국 외교부 "침략 직시"촉구
차기 총리 후보 고이즈미 농림수산성 야스쿠니 참배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일본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항복 80주년 행사에서 13년 만에 처음으로 반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주변국에 대한 침략, 가해 표현은 없어 진정한 반성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15일 도쿄 치요다구 무도관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패전 80주년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패전일 추도사에서 "전쟁의 참화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 다시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사히 신문이 인용한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추도사는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과거 반성이 필수라는 이시바 총리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가해 책임은 언급하지 않은 채 전쟁에 대한 '반성'만 되살렸다. 침략이나 가해라는 표현은 빠져 식민지로 지배했던 이웃 국가에 대한 진정한 반성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일본 총리의 추도사 이후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일본이 전시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른 선택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왕이 외교부 부장은 일본의 특정 세력이 전쟁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부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의 추도사를 보면 1993년 호소카와 고희 총리가 아시아의 희생자를 언급하며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이듬해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희생을 가져왔다"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일본의 가해 책임을 언급했다. 이후에도 역대 총리는 '반성'을 언급해 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재집권한 2013년 이후 추도사에서는 '반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어 간 나오키, 기시다 후미오 두 총리도 '반성'을 사용하지 않는 아베 총리의 노선을 따랐다.
이에 따라 일왕만 전몰자 추도식에서 '반성'을 언급해왔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추도식에서도 "깊은 반성과 슬픔"을 표하며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는 "전쟁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수많은 이들과 유족들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과 반성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를 되돌아보고, 전쟁의 참혹함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행사장 외부에는 일본 국기가 조기로 게양되었고, 마사코 왕비도 함께 자리했다.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는 폭염 속에서도 우산을 들고 참배에 나선 시민들로 붐볐다. 오전에는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지난해 10월 이시바 내각 발족 후 각료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으로 확인된 건 고이즈미 수산상이 처음이다. 그는 환경상을 맡았던 지난 2020년과 2021년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다.
집권 자민당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과 일본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산세이토(참정당)' 소속 의원들도 아스쿠니를 찾았다. 전날에는 모리야마 히로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공물을 봉납했고, 그 전날에는 자민당 의원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을 명령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 등 246만 6000여명의 영령이 합사된 일본 우익의 성지다.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그리고 아이코 공주는 다음 달 나가사키를 방문해 원폭 생존자들과 만나고 전몰자들을 추모할 예정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2019년 즉위 이후 처음으로 나가사키를 공식 방문하는 일정으로 알려졌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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