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 공항의 보조배터리 대란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이 보조배터리는 기내로 반입할 수 없어요."

중국이 보조배터리로 인한 기내 화재 사고 방지를 위해 자국 강제인증(China Compulsory Certification, CCC 또는 3C 인증) 표기가 없는 보조배터리의 국내선 기내 반입을 금지한다고 밝히면서 탑승객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중국 민용항공국(민항국)은 최근 "6월 28일부터 중국 국내선 승객은 '3C' 마크가 없거나 표시가 불분명한 보조배터리 또는 리콜 대상 보조배터리를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발표가 이뤄진 시점은 관련 지침을 시행하기 불과 3일 전이다.

이번 조치는 최근 중국 보조배터리 브랜드인 뤄마스, 안커 등이 화재 위험으로 리콜을 결정한 이후 나왔다. 중국 내에서 판매된 해당 브랜드의 보조배터리는 100만 개가 넘는다.

중국 당국이 '3C' 표기가 없는 보조배터리의 기내 반입을 금지한 이튿날인 지난달 29일 중국 지린성 옌지 공항에선 승객들의 혼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보안검색에 앞서 공항 관계자는 승객들의 보조배터리를 일일히 검사했다. 보조배터리 뒷면의 표기가 작은 글씨로 되어있던 탓에 돋보기까지 동원해 'CCC' 표기를 찾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적격 판정을 받은 배터리는 많지 많았다. 기자가 '배터리 검사'를 받기 전 이미 수많은 배터리가 부적격 판정을 받고 옆의 바구니에 사실상 버려졌다.

29일 중국 지린성 옌지 공항 관계자가 보조배터리의 'CCC' 표기를 확인하기 위해 돋보기를 들고 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4명의 일행 중 단 1명만 보조배터리를 지켜냈다. 한국에서 구매한 샤오미 보조배터리는 물론이고 중국에서 제작돼 한국으로 수출되는 과정에서 'KC인증'을 받은 한국산 보조배터리도 탈락했다. 한국에서 판매된 배터리에 중국 내 인증인 'CCC' 표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KC인증'이 중국의 'CCC'인증과 같은 절차를 거쳤다는 기자의 설명도 소용이 없었다.

보안검색을 거쳐 항공기를 대기하는 곳에 마련된 콘센트 옆에는 '보조배터리와 강제 이별한' 수십명의 탑승객이 모여 휴대전화를 충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 주말 사이 공무, 여행 등을 위해 중국 국내선 항공기를 탄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갑자기 바뀐 규정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보조배터리 대란을 겪은 주변인들 사이에선 "며칠전만 해도 반입 가능했던 보조배터리였는데 배터리를 빼앗겼다", "국내에서 구매한 보조배터리를 들고 중국 국내선은 이제 못 타겠다", "조치를 발표하자마자 계도기간 없이 바로 이렇게 압수하다니 역시 중국임을 실감한다" 등 반응이 이어졌다.

중국 내에서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공유 보조배터리 업체인 '졔뎬', '우쿵' 등의 보조배터리에도 'CCC' 인증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당국의 이번 조치가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보조배터리가 쌓여있다.

발표하자마자 시행에 들어가면서 혼란을 준 건 최근 한국 부동산 대책에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수도권·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고, 생애최초 주담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기존 80%에서 70%로 낮추는 동시에 '6개월 이내 실거주 요건'도 새롭게 추가하는 내용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새 규제는 발표 다음날인 28일부터 즉시 시행됐다. 발표 당일 일부 공인중개사무소나 은행 영업점엔 휴가를 내고 급하게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대출 접수를 하러 찾은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등 현장에선 혼란이 펼쳐졌다.

물론 두 사안은 경중이 달라 그 자체로 비교할 것은 아니다. 급하게 규제를 시장에 적용해야 할 사정도 있을 것이다. 다만 크든 작든 모든 정책은 이를 따라야 하는 국민들의 고통이 적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중국 공항에서 벌어진 보조배터리 대란의 경우처럼 합리적인 선택을 해 온 평범한 시민들이 갑작스럽게 곤란한 일을 당한다면 정책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이번 6·27 부동산 대책 역시 이런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실행되기를 바란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