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쇼' 선전장 전락한 G7 서밋…"아베의 승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26일 일본 미에(三重)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개막한 가운데 세션 2 미팅에 앞서 정상들이 사진 포즈를 취했다. 앞줄 왼쪽부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広島)를 방문해 피폭의 실상을 만지고 그 기분을, 그 생각을 세계에 발신하는 것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오바마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27일 히로시마를 방문하기로 결정하자 도쿄 관저에서 취재진에 이번 방문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전쟁가능국을 만들겠다며 거침없이 우향우 행보를 보여온 아베 총리의 평소 행보와는 판이하다. '평화전도사' 같은 아베 총리의 모습은 비핵화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도 맞지 않다.

사노 도시오(佐野利男) 일본 군축대사는 이달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실무그룹의 제 2차 회의에서 핵무기의 전면 금지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도쿄신문은 피폭국이면서도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사정이 배경에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앞서 지난해 8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위령식에서 '비핵 3원칙'을 생략해 원폭 피해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사흘 뒤 나가사키(長崎)에서 열린 행사에서 '비핵 3원칙'을 언급했지만 비핵화에 대해 입장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렇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전쟁 책임의 희석에 이용하려는 꿍꿍이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은 원폭 피해국이기 이전에 가해국이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처음으로 실현시켰다는 업적을 내세우려 한다는 진단도 있다.

24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예정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돔의 물에 비친 모습이 보인다. ⓒ AFP=뉴스1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에 이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효과는 명확하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13~15일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키로 결정한 데 대해 응답자의 93%가 '평가한다'(가치를 인정한다는 뜻)고 답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5일 "자민당에선 서밋(정상회담) 외교,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역사적 성과를 배경으로 총리가 더블선거(중참 양원 선거를 함께 치르는 것)로 '치고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급속히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뿐 아니라 이세신궁(伊勢神宮) 방문이라는 G7 정상회담 첫 공식 일정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일본의 정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장소"라는 아베 총리의 발언과 달리 이세신궁이 일본 보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메이지 정부는 일왕(천황)에 일체의 가치를 두는 것으로, 근대 국가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신도(神道)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신사를 국가 관리하에 두면서,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던 신사를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서열화했다.

국가신도에서 국민은 일왕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요받았다. 일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관은 '팔굉일우'(八紘一宇ㆍ일왕이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사상으로 발전해 침략 전쟁을 정당화시켰다. 즉, 국가신도는 일왕 아래 군국주의, 국가주의와 결합해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드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패전 후 미국에 의해 국가 신도 정책은 중단됐다.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극우 세력은 이를 되돌려놓길 원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매년 새해 업무 시작에 앞서 각료들과 함께 이곳을 참배하고 있으며, 2013년 10월 이세신궁의 '식년천궁(式年遷宮)' 행사에는 현직 총리로선 84년 만에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등 G7 정상과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이 G7 정상회담 첫날인 26일 (현지시간) 미에 현에 있는 이세신궁을 방문하면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AFP=뉴스1

이곳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등 G6 정상들이 찾았다. 이들은 이세신궁을 산책하고 식수를 했다. 산케이신문은 정상들이 이세신궁을 방문해 '참배'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보수층으로서는 일본 외교의 승리, 대단한 성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지점에 있다. 세계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대(對)테러·난민문제, 기후변화·에너지 등을 주제로 모두 5개의 세션을 숨가쁘게 소화해야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다른 것들에 맞춰져 있다. 특히 지속가능한 성장의 해법은 도출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거점화 시도나 철강 공급 과잉 등에 관한 사항을 논의 테이블에 올린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아베 총리의 국내 정치를 위해 G7 회의가 들러리를 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총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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