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타 난민사태 뒤 서사하라 분쟁…반기문도 울었다[최종일의 월드 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16년 3월 알제리아에 있는 사하라위 난민촌을 방문했다. ⓒ AFP=뉴스1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16년 3월 알제리아에 있는 사하라위 난민촌을 방문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2026년 7월, 스페인과 좁은 해협을 두고 맞닿은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를 향해 수만 명의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유럽의 국경 위기가 다시 주목받았다. 그러나 세우타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난민 문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스페인의 식민 통치 종료 이후 해결되지 않은 서사하라 분쟁과 북아프리카 주도권을 둘러싼 모로코·알제리·스페인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서사하라(Western Sahara)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탈식민지 분쟁 가운데 하나다. 1975년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스페인이 철수한 뒤 새로운 갈등의 무대가 됐다. 당시 모로코는 역사적 연고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했고, 같은 해 약 35만 명을 동원한 민간인 시위를 통해 스페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결국 스페인은 주민투표를 통한 자결권 보장이라는 당초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채 1976년 초 사실상 서사하라에서 철수했다.

스페인이 떠난 자리에는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행정권을 넘겨받았다. 모로코는 서사하라 북부와 서부 대부분을 장악했고, 이에 맞서 이 지역에 오래 거주해 온 토착 주민인 사하라위(Sahrawi)의 독립운동 세력 '폴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은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SADR)' 수립을 선언하고 무장 투쟁에 나섰다. 알제리는 폴사리오를 지원하며 모로코와 북아프리카 지역 패권 경쟁을 벌였다.

유엔은 오랫동안 서사하라 주민들이 독립과 모로코 편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를 해법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인 유권자 범위를 둘러싸고 모로코와 폴사리오가 충돌하면서 주민투표는 지금까지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 오랜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다. 그는 2015년 11월 서사하라 문제와 관련해 "갈등과 그로 인한 인도적 고통이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이 지역 주민들이 공동의 도전에 대응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반 총장은 직접 현장을 찾았다. 그는 모로코와 알제리, 폴사리오 지도부를 차례로 만나고 알제리 남서부 틴두프의 서사하라 난민촌을 방문해 수십 년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하라위 난민들의 현실을 확인했다.

서사하라 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하라위들이다. 전쟁 이후 이들의 공동체는 세 갈래로 흩어졌다. 서사하라 서부의 주요 도시와 해안 지역은 모로코가 통제하고 있으며, 동쪽 사막 지대는 폴사리오가 관리하는 이른바 '자유지대'다. 또 수만~수십만 명의 난민들은 국경 너머 알제리에서 수십 년째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로코 남동부와 서사하라를 가로지르는 모래 방벽의 항공 사진. 출처: 유엔

이들을 갈라놓는 가장 상징적인 구조물이 바로 모로코가 건설한 약 2700㎞ 길이의 모래 방벽이다. 폴사리오의 게릴라 공격을 막기 위해 1980년대 건설된 이 장벽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군사 장벽 중 하나로, 주변에는 대규모 지뢰 지대와 감시 시설이 설치돼 있다.

반 총장이 말한 "인도적 고통"은 바로 이런 현실을 의미한다. 한 세대가 고향을 떠난 뒤 다음 세대가 난민촌에서 태어나고, 그 후손은 한 번도 조상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비극이 반세기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문은 뜻밖의 외교 갈등을 불러왔다. 반 총장이 서사하라 상황을 설명하며 사용한 "점령(occupation)"이라는 표현에 모로코가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모로코는 유엔 사무총장이 중립성을 잃었다고 비판했고, 유엔 서사하라 평화유지 임무의 인력 축소를 요구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반 총장의 노력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다시 끌어내는 계기가 됐지만, 수십 년 동안 굳어진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이 같은 배경은 세우타 문제와도 연결된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스페인의 영토로, 모로코는 이를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스페인은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자국 영토이며 주민들의 의사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맞선다.

특히 세우타의 난민 사태는 단순한 경제적 이주 문제가 아니라 북아프리카 외교 갈등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주요 관문을 통제하고 있어 국경 관리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스페인과 유럽연합(EU)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세우타 사태다. 당시 스페인이 폴사리오 전선 지도자 브라힘 갈리의 치료 목적 입국을 허용하자, 모로코는 국경 통제를 느슨하게 했고 하루 만에 약 8000명의 이주민이 세우타로 몰려들었다. 이는 난민 문제가 북아프리카 외교 갈등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최근 세우타를 향한 대규모 이주민 유입 역시 스페인과 모로코, 그리고 모로코의 오랜 라이벌인 알제리 사이의 복잡한 외교 역학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페인은 오랫동안 서사하라 문제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2년 모로코가 제시한 자치안을 "가장 현실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평가하면서 사실상 외교 노선을 전환했다. 이에 폴사리오 전선을 지원해 온 알제리는 강하게 반발했고, 스페인과의 외교 관계도 급격히 냉각됐다.

30일(현지시간) 스페인 자치시 세우타로 모로코 이민자 수백 명이 바다를 헤엄쳐 진입하고 있다. 2026.07.30. ⓒ AFP=뉴스1

하지만 최근 스페인이 에너지와 안보 협력을 위해 알제리와 관계 회복에 나서면서 북아프리카를 둘러싼 외교 구도에도 다시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로코가 이러한 움직임을 견제하고,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인 세우타의 국경 관리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전략적 영향력을 과시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결국 세우타의 국경 위기는 단순한 이민 문제가 아니다. 이는 서사하라를 둘러싼 오랜 영토 분쟁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역 패권 경쟁이 유럽의 최전선에서 표출된 사건이다. 서구의 식민 지배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지 오래됐지만, 그 과정에서 남겨진 국경과 영토 문제, 그리고 민족 간 갈등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