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에 흔들린 美·사우디…트럼프, '핵연료' 내주며 복원 시도
美, 사우디와 유대 공고화 및 원자력 시장 확보…중·러 영향력 차단
사우디, 이란 견제할 핵잠재력 확보…"중동 핵확산 위험" 우려도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핵연료 생산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미국 원자력 산업에 대형 시장을 확보하는 식으로, 이란 전쟁으로 흔들린 양국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는 포괄적 핵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과 사우디 양국은 이르면 22일 민간 원자력 협정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협정은 양국의 민간 원자력 협력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이른바 '123 협정' 형태가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이 협정으로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미국 원자력 산업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국의 핵 협력은 수년간 논의돼 왔는데,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사우디의 이스라엘 외교 관계 정상화와 맞바꾸는 대형 중동 합의의 일부로 추진됐다.
그러나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후 이 구상은 사실상 진전을 멈췄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이스라엘 인정 요구와 민간 원자력 협력을 분리했다.
이번 협정은 이란과의 전쟁으로 긴장이 고조된 미국과 사우디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이 크다고 외신들은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해 11월 백악관 회동에서 민간 원자력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이후 양국은 세부 내용을 협의해 왔다.
특히 사우디는 최근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 5월 미국이 상업용 유조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호위하는 작전을 위해 사우디 영공을 사용하려 하자 이를 거부했다. 사우디는 동시에 이란과의 대화도 모색해 왔다.
이번에 미국은 사우디에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공동 연구 결과 핵연료 생산의 경제성이 인정될 경우, 사우디가 자국 내에서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사찰단의 접근 역시 제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미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한 원자력 협정과 비교하면 크게 완화된 조건이다. 당시 UAE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화된 사찰을 받아들이고 자체 핵연료 생산 권리를 포기했으며, 이 협정은 핵무기 확산 방지의 '황금 표준'으로 평가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 협정에는 미국 의회와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사우디가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활용해 궁극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사우디도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협정은 의회의 검토를 거쳐야 하지만, 실제로 이를 저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의회가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협정에는 사우디와 합의한 두 개의 비공개 부속 서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의원들은 서한이 공개되지 않으면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우디가 원자력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주된 동기는 이란과의 오랜 라이벌 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양국은 2023년 중국에서의 정상회담 계기를 통해 관계를 정상화했으나, 이란은 핵 및 탄도미사일 기술과 광범위한 대리 세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우위를 유지해 왔다.
사우디 정부는 2010년 왕실 칙령을 통해 자체 원자력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고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중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의 기업들과 협력을 맺어왔다. 특히 중국은 2005년부터 2024년 사이에 사우디 에너지 인프라에 116억 달러를 투자하며 우라늄 매장량 조사를 지원하기도 했으나, 사우디의 원자력 프로그램은 그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와 파키스탄 간의 역사적 유대와 상호 방위 조약을 바탕으로, 사우디가 필요시 파키스탄으로부터 핵탄두나 기술을 즉시 넘겨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우디 내부에 원자력 인프라가 구축되어야만 향후 파키스탄으로부터 들여올 핵무기를 효과적으로 관리·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민주 양당 행정부 모두에서 비확산 자문역을 지낸 전직 국무부 고위 관료 로버트 아인혼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번 협정은 미국 원자력 산업을 활성화하고 미·사우디 유대를 공고히 하며 사우디 핵 프로그램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역할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도, "우라늄 농축 제한을 포함한 적절한 제약이 없다면 중동 및 그 이외 지역에서의 핵 확산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해 11월 방위 협력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여기에는 사우디에 첨단 F-35 전투기를 판매하는 방안이 포함됐지만, 미국 상원의 비준이 필요한 정식 상호방위조약에는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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