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나라 '석유 사재기'에 개도국 신음…"에너지 양극화 비극"
팬데믹 당시 백신·마스크 대란 재현…'공급 공포'에 국제공조 붕괴
"각자도생에 정글의 법칙뿐" 우려…IMF·IEA "수출금지 멈춰라" 경고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중동발 분쟁이 촉발한 에너지 공급 불안이 전 세계적인 사재기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금력을 갖춘 부유한 국가들이 원유와 가스 물량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은 심각한 에너지 부족 사태에 직면하며 국제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 부족에 대한 공포가 비축 수요를 자극하고, 이것이 시장에 도는 물량을 줄여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이사벨라 웨버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시장은 조화로운 분배 장치가 아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됐다"며 "가격 폭등에 의한 자원 배분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재기 열풍은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마스크와 백신을 둘러싼 비축 전쟁을 연상시킨다고 NYT는 전했다.
중국과 태국이 자국 내 공급 안정을 이유로 항공유 수출을 중단하자 수입 의존도가 높은 베트남·미얀마·파키스탄 등은 연료 부족 사태를 겪게 됐다.
에스와르 프라사르 코넬대 교수는 "거대한 충격이 닥치자 세계는 또다시 각자도생 분위기로 돌입했다"며 국제 공조 체제의 붕괴를 우려했다.
유럽도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일 루프트한자 그룹은 전쟁 발발 이후 두 배로 치솟은 항공유 가격 부담으로 오는 10월까지 단거리 항공편 2만 편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항공유 4만 톤을 절약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상황이 악화하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공동 성명을 내고 각국에 에너지 비축과 수출 금지 조치를 자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말라"고 경고하며 각국의 이기적인 조치들이 전 세계 상황을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이미 견고한 방어벽을 쌓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고 중국은 막대한 저장 시설을 바탕으로 대체 물량을 확보하고 나섰다.
반면 필리핀은 치솟는 유가에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했고, 인도에서는 취사용 가스통 사재기 단속이 벌어지는 등 개발도상국들이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 내 소비를 위해 올린 가격 부담을 가난한 국가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불평등한 에너지 전쟁이 현실화한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국가적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국경이 다시 중요해졌다"며 "이번 사태가 전후 세계화를 지탱해 온 자유무역 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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