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내고 지나가" 호르무즈 봉쇄 어떻게 볼까 [최종일의 월드 뷰]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수로로,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37조에 따른 '국제 해협'에 해당하는 것으로 널리 해석된다. 이에 따라 제38조가 규정한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 적용되며, 모든 선박과 항공기는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 권리를 가진다. 연안국 역시 이러한 통항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란은 1982년 협약에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통과통항권을 이행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대신 연안국의 안보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 체제가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현재의 조치가 해협 봉쇄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응한 자위권 행사이며, 적대국 선박의 항행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제법적 논쟁의 여지가 크다. 다수의 국제법 학계와 주요 해양 강국들은 통과통항권이 단순한 조약 규정을 넘어 관습 국제법으로 자리잡았다고 본다. 특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자국이 협약 비당사국인데도 해당 권리를 일관되게 주장하며, 국제 해협에서의 항행 자유를 기정사실화해 왔다.

더욱이 이란이 12해리 영해라는 협약상의 권리는 사실상 향유하면서, 그 전제로 설계된 항행 자유는 부정하는 것은 법적 일관성 측면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권리와 의무의 선택적 수용이라는 점에서 국제법 질서의 기본 원칙과 충돌한다.

무해통항권을 전제로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무해성 여부는, 무기 사용이나 정보 수집 등 선박의 실제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 단순히 특정 국가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통항을 제한하는 것은 자의적 차별로 평가될 소지가 크다.

논란의 핵심은 이란이 추진 중인 통행료 징수 구상이다. UNCLOS 제26조는 영해에서조차 외국 선박이 단순히 통과한다는 이유만으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도선·예인·구조 등 구체적 서비스에 대한 대가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하지만 이란이 추진하는 통행료는 이러한 서비스 대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사는 요금 지불을 거부하며 해협 진입을 피하고 있으나,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이미 일부 우호국 선박으로부터 통행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에 따르면, 최근 한 선박이 안전 통과를 위해 200만 달러(약 30억 원)를 위안화로 지불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러한 관행이 정착될 경우 파급 효과는 막대하다. 통행료가 표준화되면 걸프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약 5달러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으며, 모든 상선에 적용될 경우 연간 약 500억 달러(약 75조 원) 규모의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구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변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례 효과다. 호르무즈에서 유료 통항이 사실상 용인되면 바브엘만데브 해협, 말라카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 등 주요 수로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 세계 해상 무역의 약 75%가 13개 주요 요충지를 통과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해상 교통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나아가 일부 국가가 자국 선박 보호를 이유로 이란과 통행료 협상에 나설 경우, 이는 위법 논란이 있는 해협 통제 조치를 사실상 묵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상업적 선택을 넘어, 국제법 질서에 대한 정치적 승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