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걸프국 보복공격 사망자 12명 중 11명이 이주노동자"

전쟁터 된 기회의 땅…'카팔라' 족쇄에 탈출도 못 해
중동 내 이주노동자 약 3500만명 대피할 여력 없이 발 묶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이주노동자들. (자료사진) 2025.8.11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선 이란의 보복 공격을 받고 있는 주변 걸프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인명 피해가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자체 집계 결과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 최소 12명 중 11명이 파키스탄, 네팔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였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국적 이주노동자 무립 자만은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20년간 운전기사로 일하며 고국의 가족들에게 매달 300달러를 송금해 왔다. 그는 고향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아부다비에서 이란의 미사일 파편에 맞아 숨졌다.

자만의 사촌인 파르만 칸은 NYT에 "고향은 일자리도 없고 치안도 불안해 젊은이들을 중동으로 보내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걸프 지역 국가 경제는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이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와 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전체 인구 6260만 명 중 56%에 달하는 3526만 명이 인도와 방글라데시, 이집트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특히 UAE는 자국민 비율이 11%에 그칠 정도로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이들은 주로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건설·가사노동·경비 등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들이 전쟁의 포화 속에 유독 취약한 이유는 부유한 현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분쟁이 발생해도 즉각 대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의 발을 묶는 '카팔라'(Kafala)라는 고용허가제다. 이 제도는 이주노동자의 거주 자격을 고용주가 보증하도록 해 노동자가 직장을 바꾸거나 출국하려면 반드시 고용주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노동자들은 위험을 인지해도 자력으로 분쟁 지역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최근 쿠웨이트 미군 기지에서 일하던 민간인 계약직 노동자들은 이란의 공격 이후 인력 감축으로 숙소에 감금되다시피 했지만 고용주 허가 없이는 대피할 수 없었다.

만약 무단으로 떠나면 탈영으로 간주돼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카팔라 제도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맞물려 이주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위험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걸프 지역으로 향하는 건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걸프 국가에서 본국보다 3~4배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걸프 지역에 이미 존재하던 현지인과 이주민 간의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파르만 칸은 "전쟁이 곧 끝나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파키스탄의 가난한 가정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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