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전쟁' 발발 50주년 됐지만…요원한 중동 평화
이스라엘엔 전환점…중동정치·권력지형 바꾸다
"50년전 오늘…선택권이 없었다"
- 정이나 기자
(서울=뉴스1) 정이나 기자 = 중동지역 정치·권력 지형을 바꾼 3차 중동전쟁(1967년)이 5일(현지시간)로 발발 50주년을 맞았다.
엿새동안 이어져 '6일 전쟁'(Six Day War)으로도 불리는 3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 끝에 시나이반도,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등 아랍권 국가의 영토를 빼앗은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비롯해 오늘날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의 시초이자 중동지역에 이슬람주의가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5~10일 엿새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패배시키고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시리아 골란고원을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이후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에서는 철수했지만 골란고원과 동예루살렘을 1981년 일방적으로 자국 영토로 병합했으며 서안지구를 여전히 점령하고 있다.
AFP통신 등은 3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군이 시작했지만 발발하기 앞서 몇 주간 여러 전조증상이 있었다고 전했다.
1967년 5월10일 이스라엘이 "시리아가 침략할 경우 좌시하지만은 않겠다"고 경고한데 이어 같은 달 16일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스라엘 국경 인근 시나이 반도에서 유엔(UN) 평화유지군의 철수를 촉구했다. 나세르 전 대통령은 이후 아카바만으로 이어지는 티란해협을 봉쇄, 이스라엘 선박의 통과를 금지했고 30일에는 요르단의 후세인 국와과 방위조약을 체결했다.
결국 1967년 6월5일 오전 7시24분 이스라엘 매체들로부터 이집트군의 이스라엘 공격에 이스라엘군이 대응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집트 공군기지를 선제타격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다음 날인 6일 이스라엘군은 당시 이집트가 통치하던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시나이반도로 진격했다. 미국과 구소련의 오랜 논의 끝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7일에는 시나이반도 중심부에서 이스라엘군과 이집트군이 충돌했고 이스라엘군은 이때 수에즈운하 동쪽을 점령하고 아카바만 봉쇄를 뚫었다. 이스라엘은 이어 베들레헴, 제리코 등 요르단강 서안지구 대부분 지역을 손에 넣었고 이날 요르단은 안보리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쟁 발발 사흘만인 8일 이스라엘군이 수에즈운하에 도달하면서 시나이반도를 둘러싼 전쟁 종료가 임박했음이 확실시됐다. 마침내 이집트도 유엔이 중재한 휴전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9일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을 장악했고 나세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께 이집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역시 이날 유엔의 휴전안을 받아들였다.
엿새째인 10일에도 시리아군과 이스라엘군간 교전은 계속됐지만 골란고원의 군사요충지 쿠네이트라마저 이스라엘군에 넘어가자 시리아도 마침내 이스라엘과의 교전을 중단하고 휴전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은 6일만에 범아랍권에 걸친 '나세르 신화'를 무너뜨리고 자국의 존립을 위협한 아랍국가 3개국을 제패했다. 이것이 바로 신생국가였던 이스라엘이 지역 강국으로 클 수 있던 계기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3차 중동전쟁이 발발한지 50년이 지났지만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 분쟁과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립이 계속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체결 또한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의 칼럼니스트 기디언 레비는 "1967년 끔찍한 여름 이후 이스라엘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어야 한다"며 "이스라엘은 그어느때보다 강력하고 무장됐으며 부유해졌지만 동시에 모든 점령국가들이 그렇듯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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