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이 만든 권력, 페루 후지모리 가문의 귀환[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페루의 정치 시계가 다시 후지모리 가문을 가리켰다. 네 번째 도전 끝에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 케이코(51)가 페루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됐다. 이번 승리는 매번 선거마다 작동해온 '반(反)후지모리 정서'라는 장벽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부모의 별거로 19세의 나이로 영부인 역할을 대신하며 정치 무대에 데뷔했던 소녀가 30여 년 만에 권력의 정점에 섰다.
페루 현대사에서 후지모리의 삶과 유산은 가장 격렬히 논쟁되는 주제이다. 1980년대 후반 페루는 국가 경제가 붕괴 수준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물가는 수천 퍼센트까지 치솟았고, 화폐 기능은 마비됐다. 동시에 마오주의 게릴라 조직과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토 상당 부분은 국가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곳으로 전락했다. 리마 중심의 취약한 중앙정부 구조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틈에서 등장한 것이 알베르토 후지모리였다. 일본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교수 출신 기술관료라는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앞세워 깜짝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1990년 대선에서 기득권 엘리트를 대표하던 후보를 꺾고 정권을 잡았다.
집권 직후 그는 강경 긴축과 시장 개방 정책, 국영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페루 경제는 빠르게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그는 재계의 지지를 확보했다. 동시에 농촌 인프라 확충과 반군 소탕 작전은 대중적 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통치 방식은 빠르게 권위주의로 기울었다. 의회와의 충돌이 잦아지자 1992년 그는 군의 지원 아래 이른바 '친위 쿠데타'를 저질렀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한 뒤 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권력 집중 체제를 구축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부패와 인권 유린 논란이 본격화됐다. 언론 통제, 정치 공작, 불법 감청 의혹이 이어지며 정권의 정당성은 급격히 약화됐다. 2000년 그는 일본으로 도피한 뒤 팩스를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이후 2005년 칠레 방문 중 체포돼 페루로 송환됐고, 게릴라 토벌 과정의 민간인 학살과 부패 혐의 등으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2024년 사망했지만,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누군가에게 국가를 혼란에서 구해낸 지도자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독재다.
케이코 후지모리는 이 정치 유산 위에서 성장했다. 영부인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한 뒤 국회의원을 거쳐 거대 정당 민중권력당(FP)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대형 부패 의혹과 사법 리스크는 그의 정치 경력을 지속적으로 잠식해왔다. 그럼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은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도 자리한다.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페루 정치에서 정당은 정책 경쟁의 기능을 상실했고, 제도는 이념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작동한다. 정당 정치가 무력해진 공백을 '성씨 정치'가 메우고 있다. 후지모리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로서 그 공백을 파고드는 가장 강력한 정치 자산이 됐다.
특히 페루는 지난 10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을 교체했다. 3명은 탄핵당했고, 1명은 취임 단 6일만에 사임했다. 그래서 유권자들에게 과거 후지모리 시절의 치안 안정과 경제 정상화라는 선택적 기억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도덕성 논란보다 즉각적인 질서 회복 가능성이 더 크게 평가됐다.
물론, 그간 '케이코 노 바(Keiko no va·케이코는 안 된다)' 구호 아래 수많은 시민과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다. 아버지 시절의 경제 안정과 치안 회복 이면에 존재했던 인권 탄압과 권위주의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독재 논쟁은 점차 역사적 서사로 이동하고 있다.
케이코는 초접전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미 깊어진 정치적 분열 속에서 국가는 두쪽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그가 이끈 민중권력당은 의회에서 장기간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안정한 정치 구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케이코는 한때 부친의 정치적 유산과 거리를 두려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강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국민이 선택한 것은 질서였다. 그러나 페루의 정치 시계가 다시 과거의 독재를 가리킬지, 아니면 효능감 있는 리더십을 향해 나아갈지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다. 질서 회복의 명분이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진다면, 그 대가는 결국 페루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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