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한국 AI 호황의 그늘…서울 집값 뛰고 청년층 주거 불안"

"반도체發 부, 수도권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李정부, 집값 잡기·청년 내집마련 사이 딜레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2026.9.7 ⓒ 뉴스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호황으로 창출된 부(富)가 수도권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서울 집값을 끌어올리고 한국 경제의 불평등과 저출산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진단했다.

FT는 8일 '한국의 AI 부동산 붐(boom)이 대통령을 압박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 집값 급등을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이재명 정부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으로 분석했다.

특히 FT는 최근 집값 상승의 배경으로 한국의 AI·반도체 호황을 주목했다. AI 붐으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의 자산이 늘었고, 'AI 부(富)'가 한국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수도권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FT는 부동산 급등을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위험으로 연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 부동산 시장을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한 것을 소개하며 부동산 거품이 수십 년간 경제를 정체시키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동시에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가 집값을 잡으면서도 급락은 막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점이라고 FT는 진단했다. 가격이 급락하면 수백만 명의 기존 주택 소유자가 반발하지만 상승세가 계속되면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한 것도 역설적으로 청년층의 주택 구매력을 제한했다고 FT는 평가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대출 없이 어떻게 집을 살 수 있겠느냐"며 강력한 대출 규제가 많은 청년의 주택 소유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는 정치적 위험으로도 번지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로 떨어졌고 20대에서는 25%에 그쳤다고 FT는 전했다. 신 교수는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FT는 한국의 진보 정부에 부동산이 반복적으로 '아킬레스건'이 돼왔다고 평가했다. 2022년 대선에서도 서울 집값 급등이 민주당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주택을 둘러싼 불안은 주식시장 변동성과 물가 상승, AI에 따른 고용 불안까지 겹치면서 더 커지고 있다. 서복경 정치평론가는 FT에 "국민에게 주택만큼 중요한 문제가 거의 없다"며 자산가치와 일자리에 대한 불안이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집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정책에 대한 불신과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가 청년층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신생아를 둔 31세 엄마 이정하씨는 2년 전 결혼할 당시 무리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다며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이것저것 한다고 하지만 집값은 계속 오른다"고 FT에 말했다.

FT는 한국의 AI 호황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역설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려 세대 간 자산 격차와 주거 불안을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억제하면서 청년층의 주택 구매 기회는 보장하고, 동시에 기존 주택 소유자의 자산가치 급락도 피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