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캐리 청산 확산 "쉬운 캐리 끝"…헤지펀드 엔화 매도 대규모 축소

금리 9월 0.25%P 인상 반영·내년 7월까지 추가 3회 베팅

달러와 엔화 지폐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에 낮은 금리로 엔화를 조달해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확산하고 있다. 엔화는 하루 만에 2% 넘게 급등하며 지난 5월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이후 가장 강한 수준에 근접했다.

엔화는 3일 달러 대비 2% 넘게 오른 뒤 4일에도 상승분 대부분을 유지하며 달러당 156엔 초반대로 강세를 나타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와 다카타 하지메 심의위원의 매파적 발언을 계기로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급격히 높아진 영향이다.

노무라증권은 엔화 약세가 다시 달러당 160엔을 향할 경우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는 BOJ가 9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거 삼브라니 노무라 선임 외환옵션 트레이더는 블룸버그에 "엔화로 자금을 조달한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과 함께 중기적으로 다른 주요 10개국(G10) 통화보다 엔화를 보유하려는 상당한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쉽게 수익을 내던 캐리 트레이드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인식"이라며 일본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자금 흐름의 규모도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BOJ 금리 오르면 엔화 빌려 투자 매력도 '뚝'

엔화는 오랫동안 대표적인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 통화였다. 일본의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린 뒤 미국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해 금리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엔화 가치가 안정적이거나 하락하면 수익을 내기 쉽지만 엔화가 급등하면 빌린 엔화를 갚는 비용이 늘면서 수익이 사라지거나 손실로 돌아설 수 있다.

최근에는 BOJ의 추가 긴축 기대가 일본 국채금리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엔화 강세와 환율 변동성 확대를 촉발하면서 캐리 트레이드의 투자 논리가 흔들리고 있다.

일본 2년물 국채금리는 이번 주 약 0.14%포인트 뛰었다. 스와프 시장은 오는 17~18일 BOJ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내년 7월까지 같은 폭의 추가 인상을 거의 세 차례 더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24년 이후 연평균 두 차례 정도였던 BOJ의 금리 인상 속도보다 훨씬 빠른 긴축을 예상하는 것이다.

엔 캐리 청산의 영향은 달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브라질 헤알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멕시코 페소 등 고금리 통화는 전날 엔화 대비 일제히 1% 넘게 떨어졌다.

옵션시장에서도 엔화 추가 상승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전날 이달 만기 달러 대비 엔화 콜옵션 거래량은 풋옵션의 2.5배를 웃돌았다. 기존 엔화 매도 포지션의 손실 위험을 줄이려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분석됐다.

엔화 숏 포지션 여전히 상당…추가 청산 가능성

엔화 가치가 더 오르면 기존 엔화 매도 포지션이 추가로 청산되면서 상승세를 증폭시킬 가능성도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달 25일까지 레버리지 펀드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8만1619계약에 달했다. 자산운용사 역시 1만8284계약 순매도를 기록했다.

BOJ가 이달 금리를 올리고 이후에도 인상 속도를 유연하게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엔화 매도 포지션을 줄이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일본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움직임을 강화한 것도 엔화에 힘을 실어준다.

이반 스타메노비치 뱅크오브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G10 외환거래 책임자는 최근 달러·엔 움직임에 대해 "시장의 어느 한쪽에서 발생한 거래라기보다 지난 48시간 동안의 상황 변화에 따른 광범위한 위험 재배분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미즈호은행의 나카지마 마사유키 수석 전략가는 이번 엔화 급등의 주요 동력이 "주로 헤지펀드 계좌에서 나타난 엔화 매도 포지션의 청산"이라며 BOJ의 추가 긴축 기대도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엔 캐리 트레이드가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갈빈 치아 소시에테제네랄 아시아 전략가는 최근 엔화 급등과 변동성 상승으로 일부 캐리 포지션이 이미 정리됐을 것이라면서도 "BOJ가 엔화 캐리 트레이드를 근본적으로 흔들기 위한 문턱은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엔화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려면 BOJ가 시장 예상보다 상당히 매파적인 긴축 신호를 내놓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는 18일 BOJ 회의에서 실제 금리 인상 여부뿐 아니라 이후 긴축 속도에 어떤 신호를 내놓느냐가 엔 캐리 트레이드의 추가 청산과 엔화 방향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