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시는 원칙, 이사들은 '인상'·'동결'…연준의 '역할 분담' 화법
워시 포워드가이던스 축소 속 개별 위원들이 구체적 정책 선택지 제시
워시 "해야 할 일 있다"…월러 이사 "디스인플레에 기회 주자"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 케빈 워시 의장이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사이 연준 이사들이 '인상'과 '동결' 같은 구체적인 정책 선택지를 제시하며 시장의 기대를 움직이고 있다.
연준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체의 합의를 대표해야 하는 만큼 특정 정책 선택지를 섣불리 못 박기 어렵다. 반면 개별 이사와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들은 자신의 견해를 전제로 보다 자유롭게 정책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최근 발언만 놓고 보면 워시는 물가가 충분히 진정되지 않으면 행동한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개별 이사들은 인상은 물론 동결이라는 구체적인 선택지를 내놨다.
사전에 짜인 역할 분담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의장이 큰 방향을 제시하고 개별 위원들이 구체적인 정책 선택지를 시장에 전달해 시장이 새로운 정책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도록 하는 '기능적 분업'은 과거에도 나타났다.
워시의 '조용한 연준'에서는 역설적으로 이사들의 한마디가 더욱 크게 들릴 수 있다. 실제 최근 워시 체제에서 이런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워시는 지난달 28일 잭슨홀 연설에서 물가가 연준 목표인 2%를 향해 충분한 속도로 내려간다는 확신이 없다면 연준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었지만 9월 금리 결정이나 인상폭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마이클 바 연준 이사는 이달 1일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완화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단호하게" 올려야 한다며 인상 가능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반대편 선택지를 꺼냈다. 이틀 뒤인 3일 월러는 8월 물가가 계속 둔화하면 오는 15~16일 FOMC에서 현재 3.50~3.7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데 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대로 물가가 다시 강해지면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월러 이사는 "디스인플레이션에 기회를 주자. 우리는 한 번의 회의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며 "지금 당장 한 번의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한다고 해서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까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러의 발언 이후 시장의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63% 수준에서 약 50%로 떨어졌고 미 국채금리는 하락했다.
의장과 개별 이사들의 발언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는 무게부터 다르다. 의장이 특정 회의의 금리 결정을 직접 언급하면 FOMC 전체의 정책 신호나 사실상의 포워드가이던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개별 이사들은 개인 견해식으로 선호하는 결정이나 금리 인상폭까지 제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의장이 경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 '반응함수'를 제시하면 다른 위원들이 그 안에서 가능한 정책 선택지를 구체화하는 효과가 생긴다.
실제로 로이터는 워시가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정책 전망에 대한 언급을 꺼리면서 생긴 공백을 다양한 연준 정책위원들의 발언이 메워왔다고 평가했다.
워시 역시 지난달 잭슨홀에서 구체적인 금리 경로 대신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둔화하지 않으면 행동한다는 반응함수를 제시했다. 그는 "더 조용하고 소통에 더 목적의식이 있는 연준"이 정책 목표 달성에 유리하다며 기존의 포워드 가이던스 축소 방침도 재확인했다.
개별 위원들의 발언이 구체적인 정책 선택지를 먼저 제시하며 시장 기대를 움직인 전례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했던 2022년 월러는 연준이 아직 금리 인상을 시작하기 전부터 0.50%포인트 인상 가능성과 빠른 긴축 경로를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당시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도 이후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더 공격적인 긴축 선택지를 시장에 제시했다.
실제 연준은 2022년 3월 0.25%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5월 0.50%포인트, 6월에는 0.75%포인트까지 인상폭을 확대했다.
특히 월러는 당시 위원들의 발언이 실제 정책보다 먼저 금융여건을 움직였다고 직접 평가했다.
그는 2021년 9월부터 금리 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강한 신호를 시장에 전달했고, 그 결과 연준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한 차례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2022년 3월까지 미 국채 2년물 금리가 2%포인트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월러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실제로 정책금리를 올리기 훨씬 전부터 경제 여건을 긴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위원들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시장의 정책 기대와 금융여건을 움직이는 통화정책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워시는 현재 이런 포워드 가이던스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월러 역시 현 상황에서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필요하지 않다는 워시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장이 말을 줄인다고 시장의 정책 신호에 대한 수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은 개별 위원들의 발언을 통해 FOMC 내부의 정책 범위를 읽으려 할 수 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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