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엔화 개입에 캐리트레이드 지각변동…엔 대신 스위스프랑 뜬다

스위스 금리 0%로 일본보다 낮아…BofA "프랑 변동성도 낮아 자금조달 매력"

스위스중앙은행(SNB)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과 일본의 이례적인 공동 외환시장 개입이 글로벌 캐리트레이드의 판도를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저금리 자금조달 통화로 애용됐던 엔화가 당국의 추가 개입 위험에 노출되면서 투자자들이 스위스프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은 19일 스위스프랑이 엔화를 대체할 새로운 캐리트레이드 조달 통화로 떠오르고 있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수년 동안 자국 통화 강세로 골머리를 앓아온 스위스에는 뜻밖의 호재가 될 수 있다. 캐리트레이드를 위해 스위스프랑을 빌려 매도하는 수요가 늘어나면 스위스프랑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통화를 빌려 팔고 금리가 더 높은 통화나 자산에 투자해 금리 차익을 얻는 전략이다. 엔화와 스위스프랑은 모두 대표적인 저금리 통화지만 그동안에는 유동성이 풍부한 엔화가 가장 선호되는 자금조달 통화였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최근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엔화 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다가 추가 개입으로 엔화 가치가 갑자기 뛰면 금리 차익보다 훨씬 큰 환차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은 지난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스위스프랑 순매도 포지션을 약 두 달 만에 가장 큰 수준으로 늘렸다. 반면 엔화 매도 포지션은 2주 연속 축소했다.

프레드릭 렙튼 뉴버거버먼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 참가자들이 일부 자금조달 포지션을 다른 통화로 옮기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엔화는 개입·금리인상 위험…스위스는 금리 0%

스위스프랑은 이미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로·프랑 환율은 약 0.9385프랑으로 프랑 가치는 유로화 대비 약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근접했다. 지난 3월 기록했던 11년 만의 최고치와 비교하면 약 4% 떨어졌다. 달러화에 대해서도 지난 1월의 11년 만의 최고치에서 약 7% 하락했다.

라보뱅크는 지난주 향후 9~12개월 유로·프랑 환율 전망치를 기존 0.94프랑에서 0.95프랑으로 높였다. 프랑화가 추가로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특히 캐리트레이드에서 중요한 금리와 변동성 모두 현재 스위스프랑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스위스중앙은행(SNB)의 정책금리는 현재 0%로 일본은행(BOJ)의 1%보다 낮다. 자금을 빌리는 비용 자체가 스위스프랑 쪽이 더 싸다는 얘기다.

아다르시 신하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주요 10개국(G10) 외환전략 책임자는 "스위스 금리가 일본보다 낮을 뿐 아니라 프랑화의 변동성도 더 낮다"고 말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프랑을 빌려 고금리 멕시코 페소에 투자하는 전략은 최근 한 달 동안 약 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엔화를 빌려 멕시코 페소에 투자한 전략의 수익률은 1.3%에 그쳤다.

반대로 엔화를 빌려 투자하기에는 위험요인이 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추가 시장 개입 가능성뿐 아니라 BOJ의 추가 금리인상 전망도 엔화 매도 포지션에 부담이다. 일본 공적연금(GPIF)이 해외에서 일본 국내 자산으로 투자 비중을 옮길 수 있다는 관측도 엔화의 수급 구조를 바꿀 변수로 꼽힌다.

실제로 최근 외환시장 개입 이후 엔화 약세에 베팅했던 숏포지션이 청산되면서 엔화 순매도 규모는 스위스프랑 수준에 가까워졌다. 크리스 터너 ING 글로벌시장 책임자는 "엔화가 자금조달 통화의 지위를 잃으려면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투자자들이 기존 습관에서 벗어나게 할 요인들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은 강한 엔화, 스위스는 약한 프랑 원한다"

스위스 입장에서는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엔화에서 프랑으로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반가울 수 있다.

스위스프랑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건전한 재정, 낮은 물가상승률, 안전자산 수요 등에 힘입어 최근 다소 약해졌음에도 5년 전보다 유로화 대비 약 12% 높은 수준이다. 강한 프랑은 스위스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성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SNB 역시 필요하면 외환시장에 개입해 프랑화 가치를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프랑을 빌려 다른 고금리 자산을 사려는 캐리트레이드가 확대되면 시장 자체가 프랑화 약세 압력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BofA는 이전부터 엔화 대비 스위스프랑 매도를 추천해왔다. 프랑당 엔화 환율이 최근 개입 전 약 200엔에서 현재 196엔 수준으로 내려온 가운데 BofA의 목표치는 190엔이다.

다만 아직 엔화에서 프랑으로의 대규모 이동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엔화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주요 통화 가운데 하나인 만큼 캐리트레이드의 핵심 자금조달 통화로 계속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움직임은 '엔캐리의 종말'이라기보다 엔화에 집중됐던 캐리트레이드 자금조달 통화가 스위스프랑 등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엔화의 낮은 금리라는 장점은 여전하지만 외환 개입과 BOJ 금리인상이라는 두 가지 위험이 커진 사이, 금리가 더 낮고 중앙은행마저 통화 강세를 원하지 않는 스위스프랑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터너는 프랑화가 엔화를 대신하는 움직임이 아직 초기 단계라면서도 앞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은 더 강한 엔화를 원하고 스위스는 더 약한 프랑을 원한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이치에 맞는다"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