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생활비전쟁①]절망한 젠지…워싱턴 화두는 '어포더빌리티'
지난해 11월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 등 선거서 '감당가능 생활비' 쟁점화
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등에 젊은이들 '포기'…11월 중간선거 키워드 전망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2026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전역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생활비 부담)'다. 미국 민주당은 중간선거의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고, 공화당 역시 물가 낮추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 수치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지만, 체감 물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젊은 층인 '젠지(Gen Z)'와 밀레니얼 세대의 절망감은 한국의 '삼포세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연방준비제도(연준)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이 평균적인 주택을 구입하려면 평균 소득보다 43%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다. 주택 중위가격은 42만 달러(약 6억 원)로 가구 중위소득(7.2만 달러)의 5.8배다.
식료품뿐 아니라 중고차 가격과 보험료, 전기료 등 필수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소득 하위 계층의 가처분소득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 퀴니피액 대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의 64%가 생활비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생활비 문제가 낙태권이나 민주주의 수호 같은 이념적 가치를 압도하는 것이다.
미국 청년들의 절망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최근 노스웨스턴대의 이승형, 시카고대의 유영근 연구원은 '포기하기(Giving Up)'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주택 소유가 불가능해진 세대의 변화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주택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들은 단순히 소비를 늘리는 것을 넘어, 직장에서의 노동 의욕을 상실하고 코인 등 고위험 자산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였다.
내 집 마련이라는 장기적 목표가 사라지자, 그 에너지가 '도박성 투자'와 '현재의 쾌락'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데이터만 놓고 보면 '어포더빌리티 위기'는 허상에 가깝다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신년 첫호에서 지적했다. 대부분의 소득 계층에서 임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앞질러 구매력 자체는 오히려 개선됐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데이터상 물가가 아닌 자산 가치가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임금이 올라도 자산 가치가 뛰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동일한 고액 연봉을 받는 두 사람을 가정해 한 명은 100만 달러 유산을 S&P500에 넣어 400만 달러로 불리고 다른 한 명은 월급만 저축했다고 보자.
두 사람이 자동차 혹은 스마트폰을 살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전망 좋은 아파트를 살 때 자산이 없는 사람은 '어포더빌리티 위기'를 뼈져리게 느낀다. 이코노미스트는 결국 작금의 문제가 "경제적 쇠퇴가 아니라 풍요 속의 경쟁이 낳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결국 과거 미국의 선거가 '성장'이나 '일자리' 중심의 거시 경제 담론이었다면, 2026년 선거는 '내 지갑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지극히 미시적이고 생존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은 지난해 가을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도시(A City We Can Afford)'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압승을 거둔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등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이념적 구호 대신 '무상 버스', '월세 동결' 등 당장 생활비를 깎아줄 수 있는 정책에 집중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생활비 문제는 전임 정부의 유산"이라며 농축산물 관세 면제와 유가 인하를 약속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저치인 38%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세대별·계층별 분열'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본다. 주택과 주식 자산을 보유한 기성세대와 달리 치솟는 월세와 학자금 대출에 신음하는 청년층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의회 주도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1992년 클린턴의 승리를 이끌었던 '전설적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최근 더 데일리 비스트 팟캐스트에서 "현재 미국 청년들의 분노에서 프랑스 혁명의 전조가 느껴진다"며 "이제는 '경제'가 아니라 '어포더빌리티' 선거의 본질"이라고 단언했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거창한 수치에 속지 않는다며 당장 "마트 영수증과 월세 고지서가 그들의 투표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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