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터닝포인트] 유엔의 다음 장을 쓰다
2025년은 유엔이 창립 80주년을 맞이한 특별한 해다. 하지만 지금은 기뻐할 때가 아니라, 이 특별한 조직의 역사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유엔의 이야기는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 모였던 선구자들, 그리고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하고 위험 지역에서 일하는 수많은 유엔 직원들의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분쟁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들은 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가 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을 찾으며 유엔의 파란 깃발을 바라본다. 내가 남수단 주바 근처 유엔 난민 캠프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말이다.
유엔 난민 기구가 운영하는 이 캠프는 원래 2,000명을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여성과 아동이 2만 명 넘게 살고 있다. 이들은 옷만 걸친 채 사막을 건너 도망쳐 왔다. 그들의 몸에는 폭력의 상처가, 정신에는 더 깊은 흉터가 남아 있다.
한 어머니는 군인들에게 딸이 계속 강간당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언젠가 캠프에서 심리 치료를 받고 딸이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인들에게 집과 학교에서 납치당했던 우크라이나의 10대들을 만났을 때도, 나는 똑같은 희망의 외침을 들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화를 내거나 복수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러시아의 공격에 굴복하지 말라는 단순한 부탁이었다. 그들은 아직 집으로 돌아와야 할 아이들이 많으니, 세상이 그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이 바로 80년 전 유엔이 만들어진 이유다. 유엔이 계속해서 이들을 돕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동시에 냉소적인 사람들이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분쟁을 빌미로 유엔이 쓸모없거나 돈 낭비라고 주장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옳은 일을 그만두면, 악이 이기게 된다. 수단의 어머니들이나 우크라이나의 10대들이 가장 힘든 시간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듯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2025년 9월에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 일반 토론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이 기관의 이야기, 즉 진정한 리더십의 이야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촉구한 이유다.
이 이야기는 쉽게 이긴 역사가 아니라, 넘어졌다가도 우리 자신과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이야기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의 용기와 결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일부로부터 순진하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두 번의 세계대전에 따른 폐허 위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와 수단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가자지구는 여전히 파괴되어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과 소녀들은 탈레반에 의해 기본적인 인권을 빼앗기고 있다. 기후 변화 때문에 바닷물이 높아지고 있다. 불평등, 극심한 가난, 굶주림이 존재한다.
이 모든 일이 유엔이 정치적, 재정적 압박을 받는 동안 일어나고 있다. 유엔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으며, 깊은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엔이 없다면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지 상상해 보라.
유엔의 가치는 어느 한 국가가 단독적으로 할 수 없는 일에 공동 행동을 모아내는 능력에 있다. 핵무기를 예로 들어 보자. 핵확산금지조약이 없었다면,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만들고 배치할 자유를 가졌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나라도 이 공동의 문제에 홀로 맞설 수 없었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나들었다. 전 세계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도움에 힘입어 함께 싸울 수 있었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관료들이 부인하든 말든, 어느 곳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이든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부유한 도시라도 산불이나 홍수를 피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이 통제되지 않아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면, 부모들이 자녀의 인터넷 사용에 대해 얼마나 안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매년 50억 명의 항공기 승객 안전 규정을 정하는 유엔 산하 기관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없다면, 여행객들이 비행에 얼마나 불안감을 느끼겠는가?
이처럼 세계화되고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함께 일하거나 아니면 혼자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총회의 주제로 ‘함께 더 나은 미래: 평화, 개발, 인권을 위한 80년 그리고 그 이상’을 선택했다.
앞으로 80년 동안 유엔이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쉬울까?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엔은 쉬운 일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유엔은 어려운 시기에 가장 힘든 문제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의 다음 장을 쓰려면, 유엔 헌장, 국제 인도법 또는 인권이 침해당할 때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고 침략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유엔을 더 강하고, 더 빠르며, 비용 효율적이고, 미래에 적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유엔 기관들 안에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며, 형식적인 절차보다 실질적인 결과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하려면 타협, 공감, 그리고 보편적 필요성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헌신이 필요하다. 80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유엔 창립자들이 보여준 헌신, 그리고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10대들, 수단의 어머니들, 그리고 잊힌 위기에 처한 수백만 명이 보여주는 그런 헌신이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오로지 옳은 일만 하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 위 내용은 뉴욕타임스(NYT)가 발간하는 새해 전망서 '터닝 포인트 어젠다 2026(이하 '터닝 포인트')'에 수록된 기사다. 다채로운 콘텐츠로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혜안을 제공하는 '터닝 포인트'는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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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터닝포인트: 2025년에 유엔은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유엔 총회 의장에게 조직의 활동과 90년 역사로 첫발을 내밀면서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해 성찰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