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최는 살아 있다 [최종일의 월드 뷰]

소련 록의 전설이자 밴드 ‘키노’의 리더였던 고려인 3세 빅토르 최(1962~1990). 유튜브 영상 캡처
소련 록의 전설이자 밴드 ‘키노’의 리더였던 고려인 3세 빅토르 최(1962~1990). 유튜브 영상 캡처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한동안 과거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모색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전환 과정에서 경제적 혼란이 커지고 개혁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소련에 대한 향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러시아의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2020년 실시한 조사에서 '소련 붕괴를 후회한다'는 응답은 65%에 달했다. '소련 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는 응답은 무려 75%였다.

그렇다고 '소련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열망이 분출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사라진 경제적 안정과 사회복지, 공동체 의식, 강대국으로서의 위상, 그리고 개인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현상으로 분석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소련 향수를 적극적으로 정치에 활용해 왔다. 옛 소련 국가(國歌)를 새롭게 편곡해 부활시켰고, 소련의 해체를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으로 선언했다. 푸틴 체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은 핵심적인 국가 기념일로 자리 잡았으며,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유산 역시 점차 재평가되고 있다.

소련 향수는 옛 소련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논리와 결합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 전차에는 전쟁 지지의 상징인 'Z' 표식과 함께 옛 소련 국기가 나부끼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싸운 러시아'라는 기억을 오늘날까지 연결해 우크라이나를 '네오나치'로 규정하고, 2022년 침공을 '탈나치화'와 조국 수호의 연장선으로 정당화하는 서사다.

푸틴은 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 속에서 실추된 국가적 자존감을 회복하고, 강한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한편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 내부의 통합과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소련의 역사적 기억을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소련의 과거가 다시 호출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다. 소련 록의 전설이자 밴드 '키노'의 리더였던 고려인 3세 빅토르 최(1962~1990)다.

빅토르 최가 소련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노래 '변화를 원한다'가 1987년 영화 '아싸'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되면서부터였다. 영화 속 최는 식당의 정식 가수로 일하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공연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장황한 설명을 듣는다. 그는 이를 뒤로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 "페레멘(변화)"를 외치고, 텅 빈 식당은 수많은 젊은이가 모인 거대한 공연장으로 바뀐다.

"우리의 심장은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두 눈은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웃음에서, 우리의 눈물에서, 우리의 맥박에서, 변화를"

최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와 경쾌한 기타 리프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평범한 삶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청춘의 감정을 담고 있다. 당시 소련 사회가 급격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었던 만큼 이 노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찬가가 됐다. 그가 '변화하는 시대의 상징'이 된 순간이었다.

러시아 국영방송이 지난 8월 14일 밴드 키노의 6월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 콘서트를 녹화 방송했다. 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빅토르 최의 생전 모습이 모아진 그래픽 이미지가 띄워졌고, 그 화면과 동기화된 그의 옛 목소리가 공연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아래엔 한 관객이 흔드는 소련 국기가 보인다.

이듬해 앨범 '혈액형'이 발표되면서 키노는 청년층의 대표적인 록밴드로 자리 잡았다. 행진곡을 연상시키는 리듬과 전쟁을 연상시키는 가사, 간결한 서사 구조를 가진 동명의 곡 '혈액형'은 시대의 정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소련판 베트남전쟁'으로도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길(전투)을 떠나는 한 젊은이의 심정을 노래한다. 승리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반전(反戰) 노래로 널리 해석된다.

빅토르 최는 생전에 자신의 노래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극히 피했다. 하지만 시대상과 맞물려 노래 '변화를 원한다'는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들에서 가장 유명한 저항가요 가운데 하나가 됐다.

러시아 야권 인사들의 시위에서 널리 사용됐고, 옛 소련 국가들의 시위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2011년 벨라루스 반정부 시위에서는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이 노래를 크게 틀었고, 시위 참가자들은 휴대전화로 동시에 이 곡을 재생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유로마이단 시위에서도 이 노래가 자주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제 빅토르 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도 호출되고 있다. 러시아의 국가적 자부심과 역사적 정체성이라는 보다 큰 서사를 구성하는 문화적 인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저항과 자유·변화를 향한 메시지는 희석되고, 그가 지닌 대중적 권위와 문화적 상징성은 국가의 역사와 애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라이프니츠 문학·문화연구센터의 역사학자 알렉산드라 콜레스니크에 따르면 2022년 모스크바 마네주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빅토르 최가 국가의 '문화적 코드'이자 '영웅적 인물'로 제시됐다. 이 전시는 대통령 문화 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같은 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시회에선 군복을 입은 빅토르 최의 이미지가 관람객을 맞았다.

심지어 그의 노래가 비공식 군가로도 불린다. 2024년 5월과 2025년 5월 전승절 열병식 준비 과정에서 군인들은 붉은광장에서 행진하며 '혈액형'을 불렀다.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군인들의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에도 '혈액형'이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영상 댓글에는 "러시아 승리", "혈액형은 우리의 충성심과 품위에 대한 노래"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달 14일에는 러시아 국영방송 제1채널이 밴드 키노의 6월 콘서트를 녹화 방송하기도 했다. 최의 사망일인 8월 15일에 맞춘 편성이었다. 키노는 2019년 재결성됐고, 빅토르 최의 생전 녹음을 복원한 목소리를 공연에서 사용하고 있다. 키노는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을 가득 메운 8만 명 팬들 앞에서 공연을 열었다. 이 경기장은 키노가 1990년 6월 24일 마지막 공연을 했던 곳이다. 공연장에는 소련 국기를 흔드는 관객들의 모습도 등장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초이의 벽' 모습이다. 가운데에 '우리의 심장은 변화를 원한다'고 적혀 있다. 우측 하단에는 '초이는 살아 있다'는 문구도 있다. 출처: 인스타그램 영상 캡처

최가 죽은 직후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한 벽에는 '오늘 빅토르 초이가 죽었다'는 문구가 적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 아래에 '초이는 살아 있다'고 썼다. 이 문장은 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고, 그 벽은 이후 '초이의 벽'으로 불리게 됐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그곳에 노래 가사를 적고 사진과 꽃, 담배를 놓으며 추모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방정부는 이 공간을 규제하거나 정비하려는 시도를 반복했지만, 팬들은 이 기억의 공간을 지켜냈다.

그의 목소리는 36년 전 멈췄지만, 그의 노래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자유를 듣고, 누군가는 변화를 듣는다. 누군가는 전쟁과 희생을 듣고, 누군가는 젊음과 상실을 듣는다. 또 누군가는 그를 소련 문화유산과 러시아의 역사적 연속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바라본다.

최는 자신의 음악에 하나의 정치적 정답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가사는 시적이고 함축적이어서 다양한 의미로 읽힐 여지가 많다. 그의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둘러싼 해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초이는 살아 있다'는 말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다만, 침략전쟁과 맞물린 애국주의 광풍 속에서 다시 호출되는 빅토르 최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달갑지는 않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