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독일이 쇠락할까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독일에서 가장 큰 기업 지멘스의 시가총액이 글로벌 70위라고 하면 모두 깜짝 놀라면서 독일이 이제 쇠락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 독일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오래전부터 그다지 크지 않았다. 독일 기업들이 아직 건재했던 2008년 파이낸셜타임스 자료를 보니 최대 기업 E.ON이 글로벌 41위였고 도이치텔레콤이 51위였다. 이유는 독일이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여서다.

'대기업'이 거의 없어도 국가별 GDP 비교에 의하면 독일은 미국, 중국 다음의 3위로 15위인 우리와 큰 차이다. 거의 우리 3배 규모의 경제다. 아직도 EU(유럽연합) 전체 경제의 25%를 커버한다. 그런 독일 기업들이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사회적인 불안이 늘어나고 있다. BASF가 2600명, 보슈가 5000명 이런 식이다.

서울 강남구 안다즈 서울강남에서 4월 20일 열린 메르세데스-벤츠의 신차 공개 행사에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디 올-뉴 일렉트릭 C클래스’가 전시되어 있다. ⓒ 뉴스1 김진환 기자

독일은 화학과 기계, 특히 자동차에서 글로벌 최강자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기계장치는 가장 믿을 수 있다는 인정을 받았고 기계의 한 종류이기도 한 자동차는 오랜 세월 독일제가 최고의 평판을 가졌다. 그 평판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독일산 기계는 최고지만 이제 경쟁자가 너무 강해졌다. 그리고 같은 성능에 가격까지 낮다면 시장 법칙은 독일을 버릴 수밖에 없다.

국민 열 명 중 한 사람이 자동차 관련 직업으로 먹고산다고 할 정도인 독일의 자동차산업이 최근 큰 시련을 맞았다.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이 늦다가 중국 전기자동차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폭스바겐이 큰 타격을 받았고 BMW도 긴장한다. 20%가 중국 주주인 다이믈러-벤츠는 난공불락의 브랜드와 든든한 유동성으로 건재하지만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하이엔드로 사업모델 재편을 생각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에너지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한 것도 문제다. 자연의 힘을 활용할 여지가 별로 없는 지형에 햇볕과 바람도 거의 없는 나라가 원전을 다 폐기하고 풍력과 태양광에 올인했다. 그러다가 우크라이나전쟁이 시작되면서 러시아와 거의 국교단절 상태에 가면서 러시아 에너지를 쓰지 못하게 되고 에너지 비용이 급증했다. 바로 공산품 가격경쟁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독일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인구다. 인구가 우리 못지않게 줄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금 수준의 산업생산력 유지에만 향후 20년 동안 25세 미만의 젊은 노동력 200만 명이 더 필요하다. 외부에서 인력을 수입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렇게 하는 경우 독일의 게르만 국가로서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다.

2024년 6월 11일(현지시간) 독일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독일은 그렇게라도 하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길이 뾰족하게 없어 보여서 주변 국가들은 옛날을 떠올린다. 마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독일은 정말 오랜만에 재무장에 들어갔다. 빚지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독일이 헌법을 고쳐서 국방예산은 정부 차입 한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지금 있는 돈으로 감당해야 하며 빚을 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현대 독일경제의 근간이자 독일인들이 자랑해 왔던 원칙이었다. 끝났다. 독일은 향후 10년 동안 국채를 발행해 우리 돈 환산 1593조 원을 조달한다.

독일이 북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에너지 정책에 올인했던 이유는 러시아와 잘 지내고 싶어서였다. 잘 지낸다 함은 싸우지 않는다는 의미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꿈을 깼다. 거액을 들였던 파이프라인을 거짓말같이 다 폐쇄하고 비싼 돈을 써서 다양한 곳에서 수입한다. 우크라이나에 전투원 파병을 제외한 군사적 지원을 함은 물론이다.

이제 독일군은 리투아니아에 주둔을 시작했다. 러시아와의 이익이 충돌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무력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지금 기진맥진한 상태이고 청년층에 큰 손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독일은 오랜 역사를 통해 러시아가 어떻게까지 할 수 있는지 잘 안다. 절대로 방심할 상대가 아니다. 최근 독일 몇 곳에서 드론 공격으로 발생한 시설물 폭발 사건에 내무장관은 공개적으로 직접 러시아를 지목했다. 러시아 대사를 초치한 후 러시아 총영사관과 러시아문화원을 폐쇄했다. 물론 러시아는 강력히 부인했다.

필자는 5년 동안 독일에서 살아 봤고 독일 사람들을 아직도 잘 안다. 독일 사람들은 재미도 없고 친해지기도 어렵지만 매우 유능하고 정직한 사람들이다. 산업국가로서의 독일이 '붕괴'한다는 전망도 있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일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인구가 지나치게 감소하지만 않는다면 독일은 일본형으로 변모해서 저성장이지만 강력한 경제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전쟁만 없다면.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