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보수장 "나토, 우크라전 장기화로 러 군사력 약화 노려"

"유럽, 러 위협 명분으로 군비 증강" 주장
美정보당국은 '이란전 틈타 러시아 유럽 도발 확대 가능성' 경계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국장. 2023.10.31 ⓒ AFP=뉴스1

(서울=뉴스1) 유철종 전문위원 = 러시아 대외정보기관 수장이 4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해 러시아의 군사력을 약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미국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이란전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약화됐다고 판단해 유럽 내 미국의 이익과 동맹국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경계한 것과 대비된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은 이날 옛 소련권 국가 협력체인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 안보·정보기관 수장 회의에서 "나토 본부가 최근 러시아와 나토의 무력 충돌 대비 수준을 분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분석을 통해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기술 및 동원 잠재력을 제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우크라이나 분쟁을 계속 장기화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나리시킨 국장은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재정 지원을 제공하면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도를 방해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유럽 사회가 동부 지역에서 벌어질 대규모 전쟁에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유럽 정치인들과 이들의 배후에 있는 금융·산업 집단은 동쪽으로부터의 위협이라는 신화를 이용해 군사비를 급격히 늘리고 산업을 군수 중심으로 전환하며 군대와 도로·항만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리시킨 국장의 발언은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25일 모스크바를 비공개로 방문해 러시아 정보기관 수장들과 회동한 이후 나왔다.

동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오히려 러시아가 유럽에서 군사적·비군사적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이란전 장기화로 미국이 약화됐다고 판단하고 이를 유럽 내 미국의 이익과 동맹국들에 대한 행동을 확대할 기회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랫클리프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도 이 같은 평가가 나온 뒤 이뤄졌다.

WP에 따르면 랫클리프 국장은 러시아 측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확전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취지로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전 장기화에 따른 미국의 군사력 운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등 주요 방공무기를 비롯한 일부 핵심 무기 재고 감소에 대한 우려가 미국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WP는 랫클리프 국장이 러시아 측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상당한 수준으로 확대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쪽으로 더 기울 수 있다는 취지의 경고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랫클리프 국장은 모스크바에서 나리시킨 SVR 국장과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FSB는 주로 국내 보안·방첩을, SVR은 해외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cj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