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제2의 호르무즈' 되나…러·우 교전 격화에 곡물수출 '비상'

오데사·노보로시스크 주요 수출항 잇단 피격…양국 곡물 수출능력 97% 감소
러 8월 곡물수출 50%↓ 전망, 우크라 75% 급감…세계 밀값 1년전보다 30%↑

흑해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민간 화물선 '골든 레오' 사진을 지난 7월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해군이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해군 제공( 2026.7.19. ⓒ AFP=뉴스1

(서울=뉴스1) 유철종 전문위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 일대 항만과 선박을 서로 공격하면서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양국의 해상 수출이 사실상 마비되고 있다.

양국의 겨울밀 수확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8월부터 새 곡물 수출 성수기가 시작된 가운데 수출 차질이 겹치면서 국제 밀 가격도 3년 만의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최대 곡물 수출 거점인 남부 오데사주에 공세를 집중했다. 이에 따라 오데사항을 비롯한 흑해 항만의 선박 운항은 사실상 중단됐다.

이어 이달 중순부터는 공격 범위를 이즈마일 등 다뉴브강 항만과 몰도바 국경 인근 교통시설 등 남부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흑해 항로에 이어 철도·도로와 다뉴브강 등 우크라이나의 대체 곡물 수송로까지 압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 흑해 곡물협정이 무산된 이후 다뉴브강과 철도를 중심으로 대체 수출망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폭염과 강수량 부족으로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져 선박 적재량은 줄고 운송비는 상승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최대 다뉴브강 곡물 수출항인 이즈마일을 공격하는 등 대체 항만까지 타격하면서 곡물 수출 선택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핵심 곡물 수출기지인 흑해·아조우해 항만을 집중 타격해 왔다.

지난 12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이후 러시아 최대 곡물 수출항인 노보로시스크의 주요 곡물터미널 3곳이 잇따라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러시아에서 가동 가능한 흑해·아조우해 권역의 곡물 수출시설은 월 처리능력 약 16만톤의 투압세 터미널 정도만 남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별도로 케르치해협 인근 타만항도 지난달부터 아조우해 선박 운항 제한으로 곡물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

러시아 수출업체들은 발트해와 카스피해 항만을 이용하는 대체 운송로를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화물을 육로로 이란의 오만만 연안 항구까지 옮긴 뒤 다시 선박에 싣는 복합운송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운송비가 비싸고 항만 처리 능력도 제한적이어서 흑해 항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주에 위치한 이즈마일 항구. 2023.07.27 ⓒ AFP=뉴스1

양측의 공격이 맞물리면서 흑해 일대 곡물 수출 능력은 급격히 줄었다.

로이터 통신이 공식 자료와 전문가 추산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흑해·아조우해 곡물 수출 능력은 지난 수출 시즌보다 97% 이상 감소했다.

러시아는 연간 약 4500만~5000만톤의 밀을 수출하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며, 보리와 옥수수 등도 주요 수출 품목이다.

흑해·아조우해 수출항 피격과 운항 차질 여파로 러시아의 이달 곡물 수출은 지난해 8월보다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밀 수출량은 약 180만톤에 그쳐 2010년 이후 8월 기준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옥수수와 밀, 보리를 주로 수출하는 우크라이나 역시 세계 곡물시장의 주요 공급국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의 약 6%, 옥수수 수출의 약 11%를 담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이달 곡물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75~76% 급감했다. 평소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오데사 지역 항만이 멈춰 서면서 수확한 곡물이 내륙에 쌓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농업정책부는 2026~2027년 밀 수출량이 기존 전망치 1760만톤에서 830만톤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흑해·아조우해 항만 차질로 올해 세계 곡물 수출의 약 17%에 해당하는 최대 8600만톤의 공급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러시아산 5200만톤, 우크라이나산 3400만톤 규모다.

세계 곡물시장은 즉각 반응하고 있다. 국제 벤치마크 밀 가격은 최근 3년 만의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밀 가격은 이달 들어 약 6.5% 상승했으며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30% 높은 수준이다. 시카고 밀 선물도 7월 초 이후 17% 이상 올랐다.

흑해산 밀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수급 불안도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는 올해 상반기 수입 밀의 82%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왔다. 여기에 가뭄과 엘니뇨에 따른 생산 차질, 비료 공급 부족까지 겹치면서 흑해발 공급 충격이 세계 식품가격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흑해 농산물시장 조사업체 소브에콘의 안드레이 시조프 대표는 최근 곡물시장 충격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원유시장에 미친 것보다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양측이 상대의 항만과 선박, 대체 수송로를 계속 공격할 경우 수출 정상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 국제 밀 가격의 추가 상승 압력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cj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