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는 건 싫지만 맥주 맛은 못 참아"…주류 공룡의 무알코올 도전

쇠퇴기 접어든 맥주시장…AB인베이브, 무알코올 맥주 개발 박차
'알코올 제거+향료 첨가' 대신 '무알코올 효모' 배양…제조 방식 바꿔

1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2022.09.17 ⓒ 뉴스1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알코올 없는 맥주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무알코올 맥주를 마실 때면 맥주를 맥주답게 만드는 '맛의 정수'가 빠져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알코올 없는 맥주가 맥주 특유의 목 넘김과 시원함, 그리고 맛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 AB인베이브의 과학자들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2월호는 맥주보다 맛있는 무알코올 맥주를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AB인베이브 맥주연구소를 조명했다.

쇠퇴기 접어든 맥주…"맥주 소비 50% 감소"

스텔라 아르투와, 코로나, 버드와이저 등 유명 맥주 브랜드를 소유한 AB인베이브는 한 해 600억 달러(약 86조 6880억원)를 벌어들이는 맥주 업계의 공룡이다. 2024년 판매한 맥주만 약 150억 갤런(약 567억 리터)에 달한다.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2만 2700개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용량이다.

이런 회사가 '무알코올 맥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수천년간 사랑을 받아온 맥주가 역사상 처음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AB인베이브에 따르면 대표적 맥주 애호 국가 벨기에와 호주에서는 1980년 이후 맥주 소비량이 50% 감소했다. 미국의 맥주 소비량도 25% 감소해 2023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젊은 세대가 더 이상 예전만큼 맥주를 즐기지 않는 것도 판매량 감소의 원인이 됐다.

무알코올 맥주는 미래의 맥주 시장을 좌우할 분야로 평가된다. 맥주 소비량 급감 속에서도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예외적으로 급성장했다. 알코올 도수 0.5% 미만의 맥주는 2024년 29%(미국 기준) 판매량이 증가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무알코올 맥주에는 소비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주류 전문 뉴스레터 '핑거스'를 연재하는 편집장 데이브 인판테는 "미국에서 무알코올 맥주는 프리미엄 고가 제품으로 여겨지며, 수익 마진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무알코올 맥주가 전 세계적 맥주량 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일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술집에서 종업원이 생맥주를 따르는 모습이다. 2023.11.22. ⓒ AFP=뉴스1
'알코올 제거+향료 첨가' 대신 '무알코올 효모' 배양…제조 방식 바꿔

통상 무알코올 맥주는 기존 맥주에서 알코올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멤브레인·역삼투압·가열 등의 방법이 활용된다. 문제는 어떤 방식을 활용하더라도 알코올을 제거할 때 휘발성 화합물과 함께 향과 풍미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결점을 가리기 위해 향료를 첨가하더라도 어딘가 밍밍한 음료가 돼버리는 것이다.

벨기에 루벤 AB인베이브 본사 내에 위치한 맥주연구소는 무알코올 맥주 제조 방식 자체를 바꿨다. 맥주를 제조한 뒤 알코올을 빼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알코올을 거의 만들지 않는 효모를 찾아 나선 것이다.

맥주의 맛은 효모에서 나온다. 효모는 발효될 때 이산화탄소, 수백 종의 향미 분자,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데 알코올은 만들지 않고 맥주만큼 풍부한 향미 분자와 이산화탄소만 만들어 내는 효모를 찾을 수 있다면 맥주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알코올을 만들지 않는 효모를 찾기 위해 맥주연구소는 항암제 연구를 하려던 효모 전문가 케빈 베르스트레펜 루벤대학교 교수를 영입했다. 고속 스크리닝 기술을 활용해 1000여 종의 효모 특성을 시험했다. 효모가 생성한 물질의 맛과 향은 분석기를 통해 분자 단위까지 측정했다. 그 결과 단당류를 섭취해 향미 분자는 생성하면서도, 맥아당은 섭취하지 않아 알코올은 극히 소량만 생성하는 특정 효모를 발견했다. 동남아시아 식물에서 채집한 '고대 세레비지아 효모'였다.

AB인베이브는 이 효모를 멕시코 맥주 브랜드 '모델로' 맥주에 접목했다. 알코올 도수는 0.4%에 불과했지만, 맥주 특유의 구수하고 쌉싸름한 향은 상당 부분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맥주는 '스마트 이스트 네그라 모델로'라는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시험 판매되고 있다. 맥주연구소 책임자 데이비드 데 슈터는 "기존 맥주와 '같은 수준'(as good as)이라는 소비자 평가 통계를 받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무알코올 맥주가 맥주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내다봤다. 효모의 유전적 설계와 발효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알코올 '모델로' 베타 버전을 출시한 AB인베이브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맥주 맛을 세분화하면서 '고대 세레비지아 효모' 이상의 궁극의 효모를 찾아내려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번 연구는 무알코올 맥주뿐만 아니라 무알코올 와인, 진, 위스키 등 주류 산업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yeh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