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종전은 80년 전후 질서 붕괴의 실체화…힘 받는 자강론
서방 매체들 "시공간 뒤틀리는 느낌…우크라 항복은 유럽의 항복"
트럼프, 中과도 무역 휴전 후 협력 손짓…나머지 세계는 美 빠진 다자주의 강조
- 이지예 객원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미국과 러시아의 물밑 합의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이어진 세계 질서의 붕괴가 실체화될 전망이다. 동맹에 고개 돌린 미국이 필요에 따라 러시아·중국과도 손잡는 거래 주의에 몰두하는 사이 유럽은 홀로서기를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립·보호주의 행보에 따른 미국 주도 국제 질서의 쇠퇴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우크라이나 종전은 이 같은 현상에 쐐기를 박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동부 돈바스 영토 포기와 안전보장을 맞바꾼다는 미러의 종전안에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이를 저지할 묘수는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럽식 수정안을 역제시하긴 했지만 미러의 초안 논의에서 진즉 배제된 유럽의 목소리가 최종적으로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4일(현지시간) 국제 분야 편집장이 작성한 논평을 통해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국제 정세 급변을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하며 "지금이야말로 유럽과 동맹들이 미국으로부터 군사 정보상 독립을 확립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한 서방국 고위 관계자는 이 매체에 현 상황에서 유럽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한 '아첨'을 계속할 필요가 있겠냐는 질문이 제기된다며 "그냥 관두라 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는 사설에서 미·러 위주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놓고 "역사가 흔들리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유럽의 항복을 의미한다.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러시아를 마주한 유럽의 안보 이익은 우크라이나와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종전 시 러시아에 국제 경제 재통합과 미·러 협력 강화라는 선물을 안기려 한다.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 체제에 복귀시키고 미러 간 에너지, 인공지능(AI), 희토류, 북극 개발을 망라하는 장기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했다.
유럽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국가들, 노르웨이 등 7개국 외무장관들은 미국이 러시아와의 협력 복구를 구상하는 시점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장선 러시아 지도부를 징벌할 '뉘른베르크'(2차대전 이후 독일 나치 전범 재판)식 특별 재판소를 설립하자고 촉구했다.
미국은 중국까지 화해의 손짓을 넓히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손수 무역 전쟁 휴전을 맺은 데 이어 중국과의 소통을 적극 확대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요청해 온 그는 24일 시 주석과 통화에선 중국과 일본의 갈등 국면에서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빠진 국제 기구에서 중견국들은 살길을 찾고 있다. 주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다자주의 정신과 모든 회원국의 동등한 지위를 강조하는 정상 선언문을 채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G20 정상회의를 보이콧했다.
일간 텔레그레프는 "전후 질서가 죽어가고 있다. 80년 전 만들어진 법적 체계는 현대 세계에 더 이상 걸맞지 않다"며 "1945년의 그림자를 되돌아보는 대신 진정한 전후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z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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