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美·러 비밀 종전 논의에 뒤통수 맞아…"우크라 항복 안돼"

트럼프가 푸틴에 등돌렸다 생각하다 충격…부랴부랴 "유럽 지지 필수" 강조

8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우크라이나 유럽 확대 정상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08.18 ⓒ AFP=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러시아가 비밀리 논의한 28개 조항의 우크라이나 종전안을 놓고 유럽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휴전 논의에 적극 관여해 온 주요국들조차 관련 논의에 깜깜이였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0일(현지시간) "유럽인들은 영속적이고 정의로운 평화를 항상 지지해 왔고,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을 환영한다"면서도 "어떤 계획이든 성공하려면 우크라이나인들과 유럽인들의 지지가 필수"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장 노엘 바로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떤 형태의 항복도 원하지 않는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거듭 지적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평화 노력을 환영하지만 유럽의 안보가 걸린 만큼 협의가 있길 기대한다"며 "방어력을 제약받아야 할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침략자"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악시오스, 텔레그레프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돈바스 지역 전면 포기와 군 병력 절반 축소, 서방이 지원하는 특정 무기의 포기, 러시아어 공식어 지정 등을 골자로 하는 평화안을 논의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특사와 러시아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직접투자펀드(RDIF) 최고경영자(CEO) 겸 경제 특사가 지난달 말 미 플로리다주에서 은밀히 만나 해당 합의를 도출했다고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를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한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평화안 수용을 압박하고 나섰다. 유럽 주요국들도 뒤늦게 미국과 러시아의 짬짬이 합의 내용을 전해 듣고 놀랍다는 반응이다.

8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2025.08.15.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관료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최근 들어 트럼프가 푸틴이 합의에 진심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봤던 터라 충격이 더욱 컸다"고 보도했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19일 "아직 해당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며 "푸틴에게 협상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선 조너선 파월 총리실 국가안보보좌관이 위트코프 특사와 친한 사이인데도 관련 내용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제야 유럽연합(EU) 측에 러시아와 논의한 우크라이나 평화안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려 하며, 유럽 의견을 받아 계획을 다듬을 수도 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서두르다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을 우려한다. 트럼프는 현 전선 동결을 주장하다가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종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오락가락 입장을 보여 왔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