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 연금수령은 안될 말"…8만명 총파업에 멈춰 선 벨기에

공항·대중교통 마비…유럽의 심장 브뤼셀 기능정지
시위대, 총리 얼굴에 수배 딱지…긴축정책에 성난 민심 폭발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14일 시위대가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5.10.14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14일(현지시간) 유럽의 심장부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 추산 8만 명, 노조 추산 14만 명의 시위대는 이날 정부의 긴축 정책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들은 법정 은퇴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하고 공무원의 조기 퇴직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부 개혁에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은 색색의 풍선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연막탄을 터뜨렸다. '67'이라는 숫자에 금지선을 그은 플래카드와 '65세에 연금 받을 권리'라고 쓰인 손팻말도 눈에 띄었다.

어떤 시위자는 바르트 더 베버르 총리의 사진 밑에 "연금 도둑으로 수배"라는 문구를 붙인 포스터를 등 뒤에 붙이고 행진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14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위자가 바르트 드 베버르 총리의 얼굴로 수배 전단을 만들어 등에 붙이고 있다. 2025.10.14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시위는 대체로 평화로웠으나 마스크를 쓴 젊은 시위대 몇몇이 집회 대열에서 이탈해 경찰과 충돌했다. 일부 시위대는 집권당인 신플람스연맹 사무실 근처 힐튼호텔 입구를 파손했고, 경찰을 향해 빈 맥주캔이나 나무막대를 던지는 이들도 목격됐다.

총파업도 함께 실시되면서 벨기에 전역의 교통도 마비됐다. 최대 공항인 브뤼셀 공항은 보안 요원들의 파업으로 모든 출국 항공편을 취소했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샤를루아 공항 또한 인력 부족으로 모든 항공편 운항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브뤼셀 시내 지하철과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 운행도 대부분 중단됐다. 이 때문에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고 일부 학교와 공공 서비스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바르트 드 베버르 벨기에 총리가 8월 26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8.26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벨기에 정부가 긴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심각한 재정난 때문이다. 벨기에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예상치는 약 5.5%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현재 GDP의 약 1.5% 수준인 국방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5%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외부 압박도 재정 긴축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노동계는 정부의 개혁안이 노동자에게만 부담을 전가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조합원 150만 명을 보유한 벨기에노조총연맹(FGTB)의 티에리 보드송 위원장은 "시민들을 진짜 움직이게 하는 건 연금 문제"라며 이번 총파업의 가장 큰 동력이 연금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도 긴축 반대 움직임이 거세다. 프랑스 정부도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내용의 연금 개혁을 추진하다가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에 직면했다. 결국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는 연금개혁 유예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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