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9년 전 쿠데타에 갇힌 튀르키예 민주주의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다리. 2025.7.17. ⓒ News1 이창규 기자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다리. 2025.7.17. ⓒ News1 이창규 기자

(앙카라·이스탄불=뉴스1) 이창규 기자 =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다리. 현재는 많은 차량들이 오가고 관광 명소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별칭은 '7·15 순교자의 다리'다.

2016년 7월 15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을 당시 시민들이 다리 위에서 쿠데타군에 맞서다 희생되면서 현재는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당시 군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휴가 중에 쿠데타를 일으켰고, 전투기와 탱크 등을 동원해 대통령궁과 의회, 방송국 등을 급습했다. 당시 군이 장악한 보스포루스 다리에서 맨몸으로 저항한 시민들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과 경찰 및 에르도안 측 군인들의 반격에 결국 쿠데타는 12시간 만에 진압됐다.

여기까지라면 '쿠데타라는 악에 맞선 시민의 승리'라는 일반적인 민주주의 드라마에 다름 아니다.

다만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이 총리 3연임에 첫 직선제 대통령까지 13년을 집권한 상태였다는 사실과, 튀르키예 역사에서 군부가 '정교 분리'라는 이른바 세속주의를 수호하는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장기 집권 지도자의 유일한 견제 세력이던 군부가 쿠데타 실패로 무력해지면서 에르도안에게 더욱 권력이 집중됐다. 총참모부가 국방부 산하로 편입되는 등 군 구조가 개편됐으며, 많은 언론사들이 폐쇄됐다.

쿠데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주인공이어서인지 9년이 흐른 지금까지 '쿠데타와 민주주의'에 기댄다. 쿠데타 박물관을 통해 국민들에게 현 정권의 정당성을 주입하고, 기념일을 맞아 전 세계 기자들을 초청해 동일한 선전 작업을 시도한다.

지난 202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에서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바꾼 것을 비롯해 일부 국민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지지율을 위해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쿠데타를 이겨낸 민주주의를 선전하며 지지율 공고화에 매달리는 사이 국민들은 살인적인 물가에 신음하고 있다. 이스탄불 관광지 인근 커피숍에서 작은 사이즈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250리라(약 8600원)에 달한다.

쿠데타에 저항한 한 참전용사의 말처럼 쿠데타 진압의 주인공은 국민들이다. 국민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현재 에르도안 대통령의 22년 간의 장기 집권은 9년 전 이미 막을 내렸을 것이다. 22년쯤 했으면 지지율이 아닌 진짜 국민을 위한 정치를 꿈꿔볼 때도 됐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