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 우크라, 폭설·진흙으로 전세는 지지부진…주민 고통 가중

러, 전력 인프라 집중 공격…전기·난방 공급 끊어 젤렌스키 정부 압박 전략

2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모습. 22.11.23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러시아의 침공이 열 달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에도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오면서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폭설과 진흙으로 전세는 지지부진한데, 러시아군이 겨울을 앞두고 전력 시설을 집중 공격한 탓에 전기와 난방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그간 우크라이나가 명백한 전력 열세에도 버텨온 저력은 군과 주민의 높은 항전의지였는데, 이 점을 러시아가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의 요구를 충족시켜 국민 고통을 끝낼 기회가 있다"고 밝혔다.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진흙탕이 전장을 뒤흔드는 우크라이나에 눈까지 내리면서 몇 주째 이어진 러시아의 폭격으로 손상된 전력 공급 시설 복구 상황이 더욱 긴급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국영 에너지 기업 우크르에네르고는 지난주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와 국가전력망이 다시 연결돼 국가 소비 수요 80%를 감당할 충분한 전기가 있다"고 밝혔지만, "송배전망이 약해진 만큼 전기를 계속 아껴 써달라"고 당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26일 밤 대국민 화상 연설에서 "저녁 소비 증가로 정전 발생 횟수가 늘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전기를 절약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게 지금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속된 러시아 포격으로 주요 인프라가 타격을 입은 우크라이나는 정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는 등 에너지난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서영 기자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를 집중 공격하며 우크라이나 전역이 정전된 가운데 지역 주민들이 핸드폰 충전을 위해 모여든 모습. 22.11.24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이 같은 주민들의 어려움은 러시아의 침공 열 달째로 접어든 젤렌스키 정부가 직면한 올겨울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공습을 재개하면서 주로 전력 인프라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퍼부었는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력 시설의 절반가량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력 공급에서만큼은 서방도 무기 공급만큼 효과적인 지원이 어려울 수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25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뒤 변압기 200대와 발전기 40대를 우크라이나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발전기 제공을 약속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발전기를 구입할 예산을 할당해뒀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정용 발전기에서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병원으로 실려오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키이우 보브리치아 마을에서는 거실에 설치한 발전기에서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한 남성이 사망하고 그 부인이 입원한 일이 있으며, 호스토멜 마을에선 같은 원인으로 12세 소녀를 포함한 일가족 4명이 입원하기도 했다.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근로자가 병사와 주민들을 위해 장작 난로를 만들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겨울 초입 추위와 날씨 특성은 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3~4월 봄과 10~11월 가을 땅이 진흙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 현상을 겪는데, 지금이 라스푸티차 막바지인데다 초겨울 추위로 눈까지 내려 바닥이 온통 진흙인 탓에 통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런 악천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의 전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다시 땅이 얼기까지 몇 주간 더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양측 병사들의 군복과 무기에도 진흙이 들러붙은 상태로 현재 같은 병력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올해 11월 11일 러시아가 남부 요충지 헤르손에서 철수하고 드니프로강 이동 지역으로 후퇴한 뒤 이렇다 할 전장의 변화가 나오지 않고 있는 배경에도 이와 같은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남부 진격은 물론, 동부 전력 강화를 다짐한 러시아군 역시 전선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 인프라시설 집중 공격에 젤렌스키 정부를 압박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발언을 지난 24일 내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파괴하는 것을 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릴 모든 기회를 갖고 있다"며 "러시아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이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끝낼 모든 기회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창인 24일(현지시간) 도네츠크 지방 리만 마을의 한 주택가 마당에서 길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있다. 22.11.24 ⓒ AFP=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이 정전 및 단수된 가운데 키이우 시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생수통을 들고 공원 급수대에 줄을 서 있다. 22.11.24 ⓒ AFP=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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