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에 대한 애증…'빈자의 도시' 낙인 콜카타

인도 뭄바이에서 불쪽으로 72㎞떨어진 비라르에 위치한 성녀 마더테레사 성당에서 열린 테레사 수녀 성인 추대 기념행사에 참석한 인도의 한 가톨릭 교도. ⓒ AFP=뉴스1
인도 뭄바이에서 불쪽으로 72㎞떨어진 비라르에 위치한 성녀 마더테레사 성당에서 열린 테레사 수녀 성인 추대 기념행사에 참석한 인도의 한 가톨릭 교도. ⓒ AFP=뉴스1

(서울=뉴스1) 배상은 기자 = 성인 반열에 오른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에 대해 정작 그가 일생을 헌신한 인도 콜카타(캘커타)에서는 이중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성인 추대는 축하하면서도 콜카타를 전 세계에 '가난한자의 도시'로 영원히 각인시킨 테레사 수녀에 대한 반감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바티칸에서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이 열린 이날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마더 하우스)에서는 약 300명이 모여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시성식 장면을 지켜봤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광장에 운집한 12만명을 향해 테레사 수녀가 성인이 됐음을 선포하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수녀 니콜은 "성인이 된 것이 아니다. 테레사 수녀는 항상 성인이었다"며 "이제 그녀는 성인으로 인정받았고 선언됐다"고 말했다.

이날 마더하우스 벽면에 걸린 테레사 수녀의 사진 아래는 수많은 꽃다발과 촛불이 놓였으며 성인 추대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잠시 침묵의 시간이 실시되기도 했다.

인도 정부 역시 수슈마 스와라지 외교장관을 포함 정부 각료 12명을 시성식에 파견하는 등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크게 환영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트위터에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에 대해 "기억할만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밝혔다.

콜카타 시당국도 다음달 테레사 수녀의 일생을 회고하는 행사를 독자적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많은 콜카타 시민들은 테레사 수녀의 유산에 대해 복합적인 애증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테레사 수녀가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후 콜카타가 시체들이 나뒹구는 빈민가의 이미지로 전 세계에 각인되면서 활기차고 문화적인 도시의 모습이 가려진 것에 대한 불만이다. 실제로 널찍한 도로들과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콜카타는 인도의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유명 영화감독겸 작가인 사티야지트 레이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도 콜카타 출신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20년간 거주한 뒤 2011년 고향 콜카타로 이주한 소설가 겸 기자 산딥 로이는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야 그녀가 콜카타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테레사 수녀의 명성이 활기찬 축구클럽과 어시장, 카페들이 있는 콜카타의 다른 복잡한 면을 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콜카타는 테레사 수녀가 살았던 곳이지만 테레사 수녀의 도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알바니아 태생으로 현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는 1929년 콜카타로 파견돼 1949년 콜카타 빈민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고 45년간 고아와 가난한자들을 돌봤다.

그러나 그의 업적에 밝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테레사 수녀가 세계 곳곳에 설립한 구호시설 중 많은 곳은 엄청난 기부금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위생상태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이에 환멸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았다.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명성이 높아진 이후 전세계를 여행하며 낙태와 피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과 독재자들이 건넨 자선기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대해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인도의 힌두교 우파들은 테레사 수녀가 인도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자 구호활동을 시작한 것이라며 테레사 수녀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는 생전 "우리는 사회노동자들도 교사도 의사나 간호사들도 아니다"며 "우리는 가난한 자들에 예수를 전파하려는 수녀들로 우리의 삶에 다른 동기나 이유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baeb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