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회의도 했는데"…'총리 사칭' 사기 58억 뜯긴 싱가포르 사업가

경찰 "정부 관계자 접촉한 적 있는 사업가 노린 듯"
"영상 속 입 모양과 음성 안 맞아…줌 로고도 왜곡"

사기범과 피해자가 나눈 왓츠앱 대화 내용. <사진=싱가포르 경찰청>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싱가포르의 한 사업가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딥페이크 사기에 휘말려 490만 싱가포르 달러(약 58억 원)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이 사업가는 로런스 웡 총리,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대통령, 블랙록 임원들을 사칭한 화상회의에 초대된 뒤 변호사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수차례에 걸쳐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경찰청은 지난 14일 '내각 사무총장 등 고위 정부 관료를 사칭한 사기 관련 주의사항'을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웡홍콴 싱가포르 내각 사무총장의 사진을 내걸고 있는 왓츠앱 메시지를 받았다. 이 메시지에는 웡 총리와 함께하는 회의에 참석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와 관련한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이메일도 받았다. 이메일에는 웡 총리의 서명이 있는 정부 발행 공식 보증서로 보이는 문서가 첨부돼 있었다. 해당 문서에는 싱가포르 정부가 15영업일 이내에 자금을 상환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해자는 비밀유지협약(NDA)에 서명하라는 요청을 받아 여기에 서명했고, 이후 웡 총리를 비롯한 싱가포르 국내외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줌 화상회의에 초대됐다.

이 회의에는 웡 총리와 타르만 대통령, 인드라니 라자 총리실 장관, 싱가포르 통화청 관계자들부터 아니타 아난드 캐나다 외무장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수석 외교 고문, 블랙록과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임원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한 요인들은 사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조작된 가짜였다.

피해자는 이를 까맣게 모른 채, 변호사로 위장한 사기범의 지시를 받아 여러 차례에 걸쳐 490만 싱가포르 달러를 계좌로 송금했다. 마지막 이체 후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피해자는 지난 14일 내각사무처에 연락했고, 그제야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해자가 사기범에게 받은 이메일. <사진=싱가포르 경찰청>

경찰은 줌 회의가 조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기술적 단서를 제시했다.

먼저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과 음성이 맞지 않았다. 이는 사전 녹화한 영상에 음성을 덧씌운 것임을 시사했다.

소리가 나오는 방식도 비정상적이었다. 실제 화상회의에서는 참석자가 발언할 때 각자의 계정에서 음성이 나와야 하지만, 피해자가 참석한 화상회의의 경우 단 하나의 계정에서만 음성이 나왔다.

또한 영상의 배경이 왜곡돼 있었고, 화면 내 줌 로고가 부분적으로 가려진 채 전경의 인물이나 화면 요소가 어긋나 있었다. 진짜 줌 화면은 로고 위치와 크기가 고정돼 있어야 하는데, 합성 과정에서 뒤틀린 것이다.

경찰은 "사기범들은 정부 관계자와 이전에 접촉한 적이 있는 사업가들을 표적으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며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낯선 사람이나 상대방에게 돈을 송금하거나 신분증 정보를 절대 제공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한 싱가포르 정부 공무원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송금 요청 △은행 로그인 정보 요구 △비공식 앱스토어를 통한 앱 설치 요구 △경찰 및 기타 정부 관계자에 대한 전화 연결 등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