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라덴의 은밀한 사생활 ‥'막내 부인'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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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 사살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미군의 추격을 피해 은신하던 9년간 4명의 자녀를 얻었고, 5곳의 은신처를 갖고 있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빈라덴의 5번째 부인이자 가장 젊은 아말 아마드 압둘 파테(사진ㆍ30)가 파키스탄 군ㆍ민간 합동조사단에 한 증언에 따르면 빈라덴은 2001년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에서 9년간 머물면서 5곳의 은신처에서 옮겨 살았다.  

빈라덴의 자녀들 중 마리암(21)과 수마야(20)는 빈라덴의 부인들과 함께 오는 30일 이민법 위반으로 기소될 예정이다. 이민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빈라덴의 부인들 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부인 하리아 후사인 사비르와 시함 샤리프는 조사에 불응하고 있지만, 예멘 출신의 부인인 파테는 형량을 낮춰주는 대가로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빈라덴 사살 당시 그와 같은 방에 있다 부상했다.  

파테는 지난 2000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과 결혼하고 싶다는 열망에 따라" 빈라덴과의 결혼에 합의했고, 같은 해 7월 파키스탄 카라치로 갔다. 몇달 후 그는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교외에 있는 빈라덴의 기지로 갔다. 그곳에는 빈라덴의 부인 2명이 살고 있었다.  

9.11테러로 인해 빈라덴 가족들은 '이산가족'이 됐다. 파테는 갓 태어난 그의 딸 사피아과 함께 카라치로 돌아가 9개월간 머물렀다. 모녀는 몇몇 파키스탄 가족과 빈라덴의 형 사아드의 안내에 따라 7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파테는 미국의 빈라덴 추격이 한창이던 2002년 하반기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에서 남편과 재결합했다. 당시 알카에다는 케냐의 이스라엘 소유 호텔과 인도네시아의 나이트클럽을 공격했다.  

빈라덴은 이후 파키스탄 북서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이곳은 당초 서방이 추정했던 소수민족 거주지역은 아니었다. 빈라덴 가족의 첫번째 은신처는 스와트의 샹그릴라 지역으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8~9개월간 2채의 집에서 거주했다.  

2003년 빈라덴 가족은 하리푸르라는 작은 마을로 옮겼는데, 이곳은 이슬라마바드와 더 가까운 지역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2년간 집을 임대해 살았다. 파테는 하리푸르의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같은 해 아시아란 이름의 둘째 딸을, 2004년 이브라힘이란 이름의 아들을 낳았다. 파테는 출산을 위해 병원에서 2~3시간만 머물렀다고 말했다.  

2005년 중반 빈라덴 가족은 하리푸르에서 동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아보타바드로 이사했다.  

파테는 2006년 딸인 자이납을 낳고 2008년 아들인 후사인을 출산했다.  

지난해 5월 미 네이비씰이 아보타바드의 빈라덴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 빈라덴과 함께 같은 방에 있던 파테는 무릎에 총을 맞아 부상했다. 그러나 빈라덴과 그의 20세 아들 할릴, 급사 부부와 급사의 동생은 사망했다.  

빈라덴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은거하던 세 부인은 이슬라마바드의 임대주택에 가택연금돼 있다. 이중 파테는 지하에 거주하고 있다.  

파테의 증언이 맞다면 미국은 2005년 빈라덴의 은신처에 근접했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2005년 10월 파키스탄 북부에서 강진이 발생해 7만3000명이 사망했다. 미군의 치눅 헬리콥터는 구제품을 싣고 빈라덴 은신처 상공을 비행했다.  

그러나 당시 미 부시 행정부와 우호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진 페르베즈 무샤라프 총리 정부는 줄곧 빈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오사마 빈라덴의 집. 빈라덴의 가족들이 가택연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 AFP=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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