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사바의 새겨진 맹세와 지워진 약속, 그리고 미래[동남아시아 TODAY]
최기룡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원
인천이나 부산 국제공항에서 직항으로 약 5시간 30여 분 정도를 날아가면 열대 산호초와 에메랄드빛 바다, 키나발루산(4095m), 정겨운 야시장과 선 셋 바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지인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에 닿을 수 있다.
보르네오(Borneo) 혹은 칼리만탄(Kalimantan)이라 불리는 섬 북쪽에 있는 코타키나발루가 말레이시아에 속한다는 것을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이 지역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코타키나발루의 이름다운 블루 모스크와 핑크 모스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선 셋 바와 레스토랑에서 이슬람 국가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인상을 받게 된다.
필리피노 마켓에서 두리안과 애플망고를 마음껏 사 먹고, 씨푸드 중식당에서 해산물을 즐기면서 다양한 종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에 다시 놀라게 된다. 다양한 언어가 뒤섞인 대화가 길거리 곳곳에서 들리지만, 누구 하나 이방인을 낯설어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길을 가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Truly Asia'(진정한 아시아)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 땅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역사의 굴곡을 지나왔는지를 알게 되면, 코타키나발루의 풍경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다양한 종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일상의 풍경은, 수백 년에 걸친 외부로부터의 간섭과 아직 완전히 이행되지 않은 약속들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코타키나발루가 속한 사바(Sabah)주는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주(가장 큰 주는 이웃한 사라왁)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보르네오섬 최북단에 위치한다. '바람 아래의 땅'(Negeri Di Bawah Bayu)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원래 '북보르네오'(North Borneo)로 불렸다. 이 땅에는 약 3만 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바라는 이름은 '상류' 또는 '북쪽'을 뜻하는 브루나이 말레이어 또는 케다얀어인 'saba'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pisang saba'라는 바나나 품종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사바는 아랍어로는 '아침'을 뜻하기도 한다.
사바 역시 동남아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외부로부터의 간섭과 침략을 받아왔다. 브루나이 술탄국과 현재 필리핀 남부에서 큰 세력을 가졌던 술루 술탄국에 조공을 바친 역사도 있다. 필리핀은 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사바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한다. 2013년에는 술루 술탄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자말룰 키람 3세(Jamalul Kiram III)가 약 200명의 무장군을 이끌고 '술루 왕실 군대'(Royal Sulu Army)라는 이름으로 사바 동부 라하드 다투(Lahad Datu)에 상륙해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말레이시아 경찰과 군인 10여 명을 포함해 양측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881년부터 1942년까지 영국의 북보르네오 회사(British 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가 현재 사바 지역을 실질적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2차 대전 중인 1941년 일본이 침공해 1945년까지 점령하면서 사바의 땅은 황폐해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바를 다시 일으킬 힘이 부족해 영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1946년 7월 15일에는 북보르네오 회사가 통치권을 영국 왕실에 넘기면서, 북보르네오라는 이름의 영국 직할 식민지(1946~1963년)가 됐다.
1963년 8월 31일 영국 총독이었던 윌리엄 구드 경이 사바의 자치를 선포하며 북보르네오는 이제 사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사바는 1963년 9월 16일 영국·말라야 연방·사라왁·싱가포르와 함께 국제 조약인 '말레이시아 협정'(MA63)을 체결하며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이 됐다. 1957년 말라야 연방 독립(메르데카 데이) 이후 6년 만에 체결된 MA63으로 말레이시아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동말레이시아에 속해 있는 사바의 인구는 약 350만 명이며, 약 33개의 토착민 집단이 살고 있다. 이 중 카다잔-두순(Kadazan-Dusun) 족이 약 30%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인구 중 토착 원주민이라고 하는 부미푸트라(Bumiputera)가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종족 구성은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세 종족 중심인 서말레이시아(말레이반도)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다양한 종족과 방언, 그리고 종교적 관용의 역사를 지닌 사바는 '다양성 속에서의 통합'이라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지역이다. 사바에는 서말레이시아에 존재하는 '케투아난 멜라유'(Ketuanan Melayu, 다수 종족인 말레이인 중심 종족주의)와 같은 단일 종족 우위 개념이 없다. 사바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진 말레이시아 시민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배경에서 MA63이 체결되는 과정에 사바의 원주민들은 사바주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지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바 인들은 사바가 단순히 협정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나라를 만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페갈란 강(Sungai Pegalan)에서 선별한 돌에 말라야 정부와의 약속을 새긴 '맹세의 돌'(Batu Sumpah Keningau)을 세우게 된다.
맹세의 돌에는 사바 종교의 자유, 사바 정부가 토지를 직접 관리할 권리, 연방 정부가 원주민의 관습과 전통을 존중하고 유지한다는 3가지 약속이 새겨졌다. 또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보장함'(Kerajaan Malaysia jamin)이라는 문구와 함께 '약속의 대가로 사바 주민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MA63에 사바 권리를 보장하는 20개 조항이 있지만, 사바 원주민들은 전통 방식으로 약속을 돌에 새겨 더욱 확실히 한 것이다.
맹세의 돌은 오랫동안 케닝가우(Keningau) 토지 사무소 앞에 세워져 통합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2014년 9월 맹세의 돌에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보장함'이라는 문구가 지워진 사실이 알려지며 큰 소란이 벌어졌다. 1978년을 전후한 도로 공사로 돌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바변화운동(APS·Angkatan Perubahan Sabah)을 이끌던 윌프레드 범부링 등 지역 정치인들은 문구를 지운 사람을 찾아 반역죄로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쏟아냈다.
이와 같은 강경한 반응은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한 이후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먼저 1976년 연방 헌법 개정으로 사바의 지위가 MA63이 약속했던 동등한 파트너 '국가'에서 다른 13개 주와 같은 일반 '주'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보르네오가 말레이시아를 함께 만든 주체였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지워져 버렸다. 또한 말레이 이슬람계 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가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연방 정부의 간섭이 동말레이시아에도 미치기 시작했다. UMNO는 1991년 사바에 진출해 사바 정치를 장악해 나갔다.
마하티르 총리 취임 이후 1994년부터 2004년 사바에서만 유일하게 인종에 따라 주지사를 돌아가며 임명하는 제도를 도입해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해 나갔다. 또한 수십만 명의 불법 이주민들에게 신분증(IC)을 발급하고 시민권을 부여해 사바의 인구 구성을 인위적으로 바꿨다는, 이른바 '프로젝트 IC' 의혹으로 큰 비판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석유 개발 수익의 불공평한 배분, 말레이반도에 유리한 선거구 획정과 의석 배분으로 사바가 의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문제까지 더해지며 사바 주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바는 말레이시아를 함께 만든 중요 파트너였음에도 오랜 기간 소외되고 약속한 권리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긴 세월을 보냈다. 수십 년 동안 사바를 포함한 보르네오의 목소리는 말레이반도의 연방 정부로부터 외면받아 왔고, 이에 일부 사바 정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아예 독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르네오 북쪽 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8년 61년 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낸 희망연합(PH: Pakatan Harapan) 정부가 석유 수익 배분 비율을 20%로 올리고, 사바 자치 권리 보장을 약속했다. 당시 부총리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은 사바를 찾아 MA63을 지키겠다고 밝혔고, 관광문화부 장관 나즈리 압둘 아지즈는 훼손된 맹세의 돌 복원과 보전을 위해 102.5만 링깃을 배정했다.
2021년 12월에는 의회에서 헌법을 고쳐 사바와 사라왁이 말레이시아를 함께 만든 대등한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다시 인정했다. 특히 2022년 총선 이후 사바의 GRS(사바정당연합)가 사라왁의 GPS(사라왁 정당연합)와 함께 안와르 이브라힘이 이끄는 통합정부 구성에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동말레이시아 사라왁 출신의 파달라 유소프가 부총리가 되고 주요 장관직을 나눠 맡으면서,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사바 주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사바 주의회 선거에서 주민들은 말레이반도 정당이 아닌 보르네오 정당의 손을 들어줬고, 안와르 총리가 이끄는 PH는 단 1석밖에 얻지 못하는 큰 패배를 당했다. 이는 말로만 그치는 약속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사바 주민들이 보내는 경고라 할 수 있다.
지워진 맹세를 진정으로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말레이시아가 진정한 Truly Asia가 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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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에서 '가성비 관광지'와 '저임금 생산기지'로만 여겨지던 동남아시아가 뜨고 있습니다. 높은 잠재력의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미중 패권 경쟁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동남아를 모릅니다. 더욱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웃인 동남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서강대 동아연구소 필자들이 격주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