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태풍에 죽어나가"…홍수사업 수천억 횡령에 필리핀 시위 분출
종교단체 INC 주도로 수십만 운집…마르코스 정부에 정치적 부담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필리핀에서 홍수 피해를 줄이려고 정부가 추진한 홍수 방지 프로젝트에 부패 의혹이 제기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수도 마닐라에서 이틀째 전개되고 있다.
로이터, AFP통신 등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마닐라에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위대가 거리에 나와 부패 의혹에 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할 예정이다.
시위는 회원 300만 명이 소속된 필리핀의 기독교계 종교단체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INC)가 전날부터 전국적으로 신도들을 동원하며 시작됐다.
전날 INC 회원들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명성"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마닐라의 리잘 공원으로 모여 "진실과 책임"을 요구했다고 대변인 에드윌 자발라가 밝혔다. 약 60만 명이 참가했던 이번 시위는 오는 18일까지 3일 간 전개될 예정이다.
이번 시위는 지난 8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정부 지원으로 진행된 홍수 통제 프로젝트에 부정부패가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수십 명의 공공사업 담당자와 건설사 임원, 국회의원들이 기준에 미달하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프로젝트'에 수십억 페소 규모의 공공 자금을 투입해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재무부는 2023~2025년 홍수조절 프로젝트에서 부패로 국가가 최대 1185억 페소(약 2조 9200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추산했다. 특히 최근 태풍 '갈매기'와 '풍웡'이 필리핀을 강타하며 전국에서 최소 259명이 사망하면서 대중의 분노도 더욱 커졌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상·하원의원, 부유한 사업가 등 37명을 부패 혐의로, 건설사 임원 86명과 공무원 9명을 약 90억 페소(약 222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는 부패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게 하겠다며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날 마닐라 거리로 몰려 나온 시위대는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시위에 참가한 아르멜린 반드릴(35)은 "(진상 규명) 절차가 시작된 지 거의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증거는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NC가 주도한 이번 시위는 2022년 선거 승리 후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관계가 악화한 마르코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INC는 매 대선 때마다 지지 후보에 몰표를 던지며 정치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2022년에는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부통령 연합의 대선 승리를 도왔고, 2016년에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게 지지 의사를 밝혔다.
지난 1월에는 마닐라에서 두테르테 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바 있다.
한편 두테르테 부통령은 마르코스 대통령도 홍수사업에 자금을 투입한 2025년 국가 예산을 승인한 혐의로 투옥돼야 한다고 공격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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