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TODAY] 동남아에서 확장되는 K-뷰티의 명암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장 =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꾸민다. 화장을 하든, 옷차림새를 가꾸든, 장신구를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꾸미는 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 왔다. 동물과 다른 점이다. 최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린 경주 황리단길에서 외국인들의 한국 화장품 구매가 부쩍 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마디로 K-뷰티의 힘이다.
동남아는 어떨까? 유럽이나 중남미에 비해 한류가 일찍 퍼진 동남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화장품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10개국 가운데 4곳이 동남아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기초 화장품과 마스크팩, 선크림, 색조 화장품의 인기가 동남아에서도 높다. 각국 여러 도시 쇼핑몰,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시장 좌판에서도 한국 화장품을 볼 수 있다. 동남아에서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한 물건 매매가 활성화된 만큼 통계에 잡히지 않은 거래도 적지 않겠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짝퉁' 한국화장품의 등장이다. 특히 K-뷰티의 인기가 높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는 한국화장품을 모방한 가짜 제품이 팔리고 있다. 대도시의 편집매장에서 한국산 브랜드로 포장한 제품이 팔리는가 하면 대형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도 한국 화장품을 교묘하게 위조한 일부 상품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위조한 화장품은 브랜드마다 제품 포장, 용기 디자인, 심지어 화장품을 밀봉한 비닐 스티커에다 정품 구별용 QR코드까지 복사한다.
정품을 흉내 낸 저렴한 제품이 제품의 질까지 모방할 수는 없다. 실제로 화장품을 바르고 나서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거나, 향기가 이상하다며 품질에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개인 SNS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위조 화장품을 고발하기도 어렵지 않다. 법적인 제재를 가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위조 화장품이 이렇게 팔리고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해외시장에 잘 알려진 조선미녀의 선크림 위조품을 감별하는 영상은 틱톡에서 조회수 800만 회를 훌쩍 넘기며 그 심각성을 널리 알렸다.
동남아 시장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스테디셀러' 제품들은 그만큼 쉽게 위조품의 표적이 되었다. 사용이 간편하고 효과가 좋은 파파레서피, 바른생각의 마스크팩, 다양한 선크림 종류, 색조 화장용 쿠션이나 메이크업 제품들도 피해를 당했다. 대기업 제품이라고 해서 위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남아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제품들을 위조하거나 한국 브랜드인 것처럼 포장한 상품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전에도 위조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중소기업 제품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데 비례해 위조 한국화장품 역시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피해를 입은 국내 브랜드들이 자체적으로 특별팀을 구성하거나 현지의 지식재산권 보호 전문기관과 협력하여 해외 온라인 쇼핑몰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며 위조품을 걸러내려 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국에서 화장품을 수입한 현지 유통업체들은 공식적으로 인증된 매장이나 온라인 채널에서만 구매하기를 권고하는 한편, 가변 QR코드로 정품 인증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위조지폐 감별하듯이 위조 방지 인쇄 기술을 써서 육안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특정 장비나 조건에서는 진품을 확인할 수 있는 특수 보안 패턴을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위조품이 적발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현지에선 팔이 안으로 굽는 분위기가 팽배한 데다,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치기 일쑤인 까닭이다. 위조품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소규모 작업장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 근절이 쉽지 않다. 게다가 장기간의 실험과 테스트를 거쳐 만들어낸 한국 화장품과 달리 위조품은 제형과 향기를 흉내 냈을 뿐, 똑같은 성분을 조합한 것도 아니다. 포뮬라가 다르단 뜻이다. 오히려 유해 성분이 포함되거나 위생 상태가 불량할 가능성이 높다. 소위 '짝퉁' 유통으로 인해 한국 화장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K-뷰티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동남아는 젊은 시장이다. 소비자 연령층이 낮다는 말이다. 연어에서 만든다는 PDRN, 병풀 추출물 등 새로운 성분과 독특한 제형을 만들어내는 한국 화장품의 빠른 혁신이 동남아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할랄 인증을 받는다든가, 현지 기후에 적합하게 개발한 인도네시아의 스킨티픽, 썸씽, 와르다, 태국 닥터 퐁에서 만든 화장품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K-뷰티의 마중물을 현지 기후와 문화에 적합한 제품 개발로 확장하고, 젊은 시장에 맞춘 친환경, 비건 제품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저가의 위조품 공세에 화장품의 한류는 좌초될지도 모른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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