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에서 스캠 소굴로…시아누크빌의 몰락[최종일의 월드 뷰]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여행지로서 동남아를 좋아한다. 캄보디아를 찾은 것은 2018년이었다. 시엠립에 있는 호텔에 머물며 앙코르와트를 며칠 둘러본 뒤 시아누크빌로 가려고 했다. 호텔 로비에서 차편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캄보디안 사람들도 가길 꺼릴 정도로 사건·사고가 많다는 것이었다.

호텔에 더 머물게 하려는 의도인가 싶어서 의심을 품은 채 시아누크빌의 정보를 검색했다. 어라, 그 이전에 여행기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시아누크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왕실 휴양지로, 예쁜 백사장이 있는 조용한 마을'이란 설명은 어느새 가짜 정보가 돼 있었다.

시아누크빌을 다시 떠올린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온라인 사기 범죄가 캄보디아에서 활개를 치고 있고, 시아누크빌이 거점이라는 외신 보도가 2022년쯤 나오기 시작했다. 취업 사기를 당해 범죄 행위에 가담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각국 청년들이 붙잡혀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피해자들은 대부분 중화권과 동남아 출신이었다. 한국인 피해자 역시 이후에 발생했다. 특히, 최근 발생한 20대 한국인 대학생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분노가 커진 상태다.

과거 서양 배낭여행자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졌던 시아누크빌이 온라인 사기 범죄의 온상으로 몰락하게 된 것은 캄보디아의 과도한 친중 정책과 해외 자본 의존형 성장 계획, 허술한 규제 장치, 부정부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관련 보고서와 외신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웃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캄보디아는 오랜 기간 친중 정책을 펴왔는데 훈센 총리 시절에 캄보디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는 더욱 심화했다. 2007년 이후 최대 공적 개발 원조(ODA) 및 외국인 직접 투자(FDI) 제공국 자리에 오른 중국은 경제 지원을 바탕으로 캄보디아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캄보디아는 연선 국가들과의 인프라 연결을 통해 글로벌 무역 벨트를 구축하는 중국의 일대일로(BRI)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했다.

시아누크빌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전략적 요충지가 됐다. 캄보디아에서 유일한 심해항이 자리 잡고 있고, 대표적인 경제특구가 가동되고 있어서였다. 시아누크빌경제특구(SSEZ)도 앞서 중국과의 합작 투자로 조성됐다.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잇는 고속도로를 비롯해 교량과 발전소 등 다수의 공공 인프라 건설에도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

개발 호황에 돈과 인력이 쏟아져 들어오니 오락·향락 산업도 덩달아 인기를 누렸다. 중국 민간 자본을 중심으로 카지노와 호텔, 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세워졌다.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다. 시아누크빌엔 몇 개의 작은 카지노 시설이 전부였는데 2019년 초엔 그 수가 100개를 넘었다. 앞서 캄보디아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외화벌이를 위해 국경 지역이나 관광지에 카지노 설립을 허용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선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됐다. 시 주석은 2018년 3월 재임이 확정되자 조직범죄 소탕을 목표로 '소흑제악(掃黑除惡)' 캠페인을 시작했다. '검은 것을 쓸어버리고 악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중국 당국의 강력 범죄 근절 의지에 중국계 범죄 조직이 대거 캄보디아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완화와 친중 정책으로 인해 중국계 기업 및 인력의 이동이 매우 자유로웠다. 2018년 7월 캄보디아 주재 중국대사관은 고소득 일자리 제안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는 글을 남겼다.

당시, 온라인 도박 사업의 주요 고객은 중국 본토 국민이어서 중국 내에선 대규모 자본 유출, 보이스피싱 등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이에 중국 정부는 캄보디아에 협조를 요청했고, 훈센 정부는 2019년 8월 온라인 도박 금지령을 전격적으로 내렸다.

상당수 카지노는 영업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수개월 뒤에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졌다. 해외 관광객 유입이 중단되면서 시아누크빌은 유령도시가 됐다. 그 시기에 중국인 약 20만 명이 캄보디아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개발업체들도 손실을 처리하고 떠났다. 합법적으로 온라인 도박 서비스를 제공했던 다수의 업체도 영업을 접었다. 남아있는 온라인 도박 조직들의 시설은 점점 더 은밀해지게 됐다. 보안이 강화됐고, 내부 직원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며 폐쇄적인 범죄 기지가 됐다는 것이다.

팬데믹 기간 시아누크빌의 시설에 갇혀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사기를 저지르도록 강요받은 이들의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독립 언론 VoD는 범죄 보고서를 검토해 도시 전역에서 유기와 살인, 폭행, 총기 난사, 갈취, 구금 사례가 발견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수수방관하진 않았다. 2022년 9월부터 시아누크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불법 도박'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범죄를 방조 또는 묵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18개월간의 취재 뒤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당국은 사기 조직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이를 계속 방치하고 있다"며 "이번 조사 결과는 범죄가 만연하도록 허용한 국가의 실패 패턴을 보여주고, 정부의 (단속) 동기에 의구심을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2024년 5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세 국가에 기반을 둔 스캠 센터들이 2023년 한 해에만 총 약 438억 달러(약 62조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추정했다. 캄보디아로 한정하면 125억~190억 달러 수익인데, 이는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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