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필리핀 대선…36년 전 '피플파워'로 몰락한 독재자家 귀환 임박
'독재자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두테르테 딸' 사라 두테르테 정·부통령 후보 당선 유력
- 최서윤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9일 필리핀 전역에서는 6700여만 유권자가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수천 명을 뽑는 '최대 정치 이벤트'가 실시된다.
투표는 현지 시간으로 새벽 6시(한국 시각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되며, 절차 지연 시 마감 시간은 좀 더 늦어질 수 있다.
마감 직후 개표가 시작되며, 비공식 집계 결과는 마감 후 몇 시간 내로 발표된다. 다만 공식 승자 선언까진 수일이 걸릴 수도 있는데, 2016년 대선 당시 승자 발표가 3주 걸렸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은 단연 '남중국해 스트롱맨'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후임이 누가 될 것이냐에 쏠린다.
필리핀 정치 체제는 6년 단임제로, 집권 초부터 이를 바꾸는 개헌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다.
대신 그의 장녀 사라 두테르테(44) 다바오 시장이 부통령으로 출사표를 던진 상황.
특히 사라와 정·부통령 러닝메이트를 이룬 유력 후보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65)는 바로 1986년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피플 파워 레볼루션)으로 쫓아낸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이란 점이 한국에는 '아픈 데자뷔'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10명이 입후보했지만, 가장 최근 여론조사(펄스아시아, 4월 중순 실시) 결과 마르코스 주니어가 지지율 56%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는 인권운동가인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이지만, 지지율은 23%로 격차가 크다. 국민적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의 지지율도 7%에 그치며, 현 마닐라 시장 이소 모레노도 4%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부통령 후보 중에서도 사라의 지지율이 55%로 압도적인데, 2·3위인 티토 소토 상원의원(18%), 로브레도 부통령의 러닝메이트 프란시스 판힐난(16%)과 격차가 상당하다.
해당 펄스아시아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2%포인트(p)에 불과하다.
승리를 자신한 마르코스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7일 고급 카지노 리조트가 내려다보이며 필리핀의 엄청난 빈부격차를 드러내는 장소에서 수십만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연설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마르코스는 "당신이 월요일 깨어 있는 한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시민 운동으로 몰아낸 독재자 가문에 다시 표를 던지려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마르코스 유세에서 환호한 메리 앤 올라디브(37, 콜센터 직원)는 AFP에 "더 많은 기회와 일자리를 원한다"며 "그들이 우리 필리핀에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각각 독재자 가문, 1987년 시민들이 바꾼 헌법을 수차례 개정 시도한 현 대통령 가문인 '마르코스-두테르테'의 귀환이 우려스럽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필리핀 한 정치분석가는 AFP에 지금의 압도적 격차대로 당선 시 "마르코스 주니어는 (현 대통령) 두테르테가 원했던 통치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톨릭 성직자들과 인권운동가, 시민단체, 지식인 등 각계도 마르코스 주니어가 자신이 나고 자란 말라카낭 궁전(대통령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로브레도 부통령을 지지해온 정치 풍자 작가 메이 패너(58)는 "(마르코스의 당선은) 또 다른 6년의 지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사회도 이번 필리핀 대선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셰일라 코로넬 교수는 "마르코스와 그의 러닝메이트 사라 두테르테의 '정치적 왕조'가 이번 선거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이는 (독재자) 마르코스 몰락 이후 필리핀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실패했음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은 1986년 2월 장장 20년을 집권해온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낸 시민혁명 이후, 이듬해인 1987년 2월 국민투표로 6년 단임제 개헌안인 '현행 87년 체제'를 확립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포함해 위정자들의 집권 연장을 위한 수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시민들이 그때마다 간신히 민주화의 산물을 지켜냈다.
그런 필리핀 사회가 '마르코스-두테르테'라는 더 강력한 조합을 만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다.
코로넬 교수에 따르면 마르코스, 두테르테 가문을 포함한 소수의 '정치적 왕조' 가문들은 현재 지자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의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는 "이제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은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두 개의 관직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재자 마르코스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에 선 필리핀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이번 선거는 앞으로 필리핀의 수십 년을 좌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ab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