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얼마나'보다 '어떻게'…손흥민은 잘 뛰고 있다 [임성일의 맥]

체코전에서 득점 기회 놓치자 우려 목소리 많아
'목표 위한 역할 변화'…원팀으로 뭉친 홍명보호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주장 손흥민이 2-1 승리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6.6.12 ⓒ 뉴스1 박지혜 기자

(과달라하라=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홍명보호의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체코와의 경기 승리(2-1 역전승)는, 우리가 상식선에서 '그래야한다'고 말하는 것을 지킨 영향이 크다.

선수들부터 지원 스태프까지 모두가 성실하게 준비했고 자신이 빛나려 하기 보단 팀의 목표를 위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경기에 출전한 이들뿐 아니라 벤치에 있던 이들까지 똘똘 뭉친, 소위 말하는 '팀 스피릿' 결과다.

먼저 선제골을 내주고 짜릿하게 뒤집은 내용과 함께 현장은 물론 축구계 전체가 잔치 분위기다. "월드컵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대표팀은 정이 안간다" 괜히 못되게 말하던 이들은 다시 '축구 전도사'로 바뀌었다. 빠른 태세 전환이 밉상이긴 해도 다행이다. 오랜만에 선수들이 기운을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손흥민을 향한 왈가왈부가 많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체코전에 선발 원톱으로 출전한 손흥민은, 꽤 많은 찬스를 잡고 슈팅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골을 넣진 못했다.

때문에 다시 '에이징 커브(나이로 인한 기량 저하)'를 비롯한 여러 말들이 들린다. 외신도 호들갑이다. 로이터 통신은 "손흥민은 전반에만 5차례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골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팀과 정한 약속대로 주어진 역할을 십분 소화했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황인범이 손흥민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2026.6.12 ⓒ 뉴스1 박지혜 기자

손흥민은 후반 24분 오현규와 교체돼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오현규는 필드를 밟은 지 약 10분 만인 후반 35분 황인범의 크로스를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다. 체코 센터백 흐라니치가 달려들었으나 더 빨리 쇄도해 몸을 넣어 자리잡고 왼발로 방향을 돌렸다. 힘도 스피드도 앞섰다.

홍명보 감독의 적절한 용병술이 우선 칭찬받아야겠다. 그리고 앞선 시간 충분히 상대를 괴롭혔던 손흥민 지분도 인정받아야한다.

손흥민은 교체 아웃될 때까지 약 70분 동안 위협적으로 움직이며 체코 수비수들 애를 먹였다. 그냥 어슬렁거린 수준이 아니라 마무리 슈팅까지 간 장면이 여럿이니 막는 입장에서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가 컸다. 고지대 영향으로 체코 선수들 발이 무거워진 탓도 있겠으나 먼저 출전해 흔들어 놓은 선수의 공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찬스 중 골이 나오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쉽다. 그래서 "예전의 손흥민이었다면" 탄식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손흥민 역할이 꼭 '해결사'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10개월 전 홍명보 감독의 발언은 현명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12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에 위치한 베이스캠프 훈련장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선수들의 회복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2026.6.13 ⓒ 뉴스1 박지혜 기자

홍명보 감독은 2025년 9월 미국 원정 평가전(미국, 멕시코) 참가 명단을 발표하던 8월25일 "이제는 손흥민이 얼마나 오래 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여론은 좋지 않았다. 특별한 부상이 아니라면 언제나 선발로 출전해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필드를 지키는 한국대표팀의 고정값 손흥민의 역할을 축소시키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파장이 컸다. 하지만 사령탑의 판단은 옳았다.

꺼내기 힘든 화두를 던진 홍 감독은 이후 평가전에서 손흥민의 출전시간과 역할을 조정하면서 월드컵을 준비했다. 그리고 손흥민 역시 달라진 주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실 이런 변화가 오롯이 팀을 위한 선택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손흥민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홍 감독은 체코전이 끝난 뒤 "오늘 손흥민이 선발이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선수들이 압박감을 받을 수 있는 경기에 주장으로서 당연히 나와야한다"면서 "손흥민은 우리가 준비한 것을 잘 수행했다. 비록 득점은 없었으나 중요하지 않다. 손흥민 골 감각은 좋다. 앞으로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주장 손흥민이 동점골을 넣은 황인범과 역전골을 넣은 오현규를 끌어 안고 있다. 2026.6.12 ⓒ 뉴스1 박지혜 기자

19일 멕시코와의 2차전은 선발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선택이 체코전에서 골을 넣지 못한 영향이라 생각하면 대회 전체를 준비한 사령탑과 캡틴이 섭섭할 일이다. 10개월 전 홍 감독의 말처럼, 손흥민은 이제 얼마나 뛰느냐보다 어떻게 뛰느냐가 더 중요하다.

혹 멕시코전 후반 15분 이후 투입돼 30분 가량 모든 것을 집중해 쏟다 결정적인 골을 터뜨릴 수 있다. 그때 적절한 해석은 '교체로 전락'이 아니라 '슈퍼 서브로 변신'이다.

2010년 12월30일 시리아와의 평가전에 18세 175일 나이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손흥민이다. 지금은 2026년 6월이다. 손흥민에게 2018 러시아 월드컵이나 2022 카타르 대회 때 퍼포먼스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쩌면 가혹한 주문이다.

10개월 전 홍명보 감독의 공언이 없었다면 손흥민의 체코전 플레이를 둘러싼 잡음은 더 커졌을 공산이 크다. 손흥민은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팀을 위해 아주 좋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