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하 감독 "내겐 너무나도 특별한 수원…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 "희생해주는 베테랑 염기훈, 미안하고 고마워"

위기에 빠진 친정 수원을 구해내고 있는 박건하 감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모든 지도자가 마찬가지일거다. 수원삼성은, 당연히 맡고 싶은 팀이다.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내게 수원은 일반적인 감정 이상을 주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원의 감독이 되는 장면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걱정도 됐고 부담도 됐다. 그래서 더더욱 간절했다."

벼랑 끝에 놓였던 친정 수원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박건하 감독(49)이 처음 팀을 맡았을 때를 떠올리며 전한 말이다.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한결 상황이 좋아졌으나, 박 감독은 "그런 안일함이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박건하 감독은 7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처음 열흘은, 정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박 감독이 수원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9월8일이었다. 그때 수원은 '더 이상 나쁠 수는 없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위기였다. 19라운드까지 끝났을 때 성적이 4승5무10패(승점 17), 12개 팀 중 11위였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FC서울과의 슈퍼매치였으니 그야말로 벼랑 끝이었다.

구단 안팎에서 "결정을 너무 미뤄서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고, 중책을 떠맡게 되는 박 감독으로서는 부담백배였다. 그래서 '리얼 블루' 박건하 감독은 더 간절했다.

박 감독은 수원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K리그에 데뷔했고 2006년 수원에서 은퇴한 '원클럽맨'이었다. 골을 터뜨린 후 옷깃을 세우던 세리머니는, 수원 팬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수원 코치, 매탄고(수원U-18) 감독을 지내면서 계속 인연을 이어나갔다.

스스로 말했듯 수원의 감독을 꿈꿨으나, 거의 불구덩이에 뛰어들어가야 했으니 괴로움도 컸다. 선수단 상견례 후 나흘 뒤에 치러야했던, 준비할 시간도 없었던 서울과의 슈퍼매치(9월13일)가 1-2 패배로 끝나면서 더 괴로운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후 반전을 일궈냈다.

9월16일 포항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수원은 이후 강원-서울-인천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흐름을 바꿨다. 올 시즌 첫 3연승과 함께 수원은 7승6무11패 승점 27점으로 8위까지 뛰어올랐다. 강등을 당하는 최하위 인천(승점 21)과는 6점차로 간격을 벌렸고 B그룹 선두인 7위 강원(승점 30)과는 3점차다.

대반전을 일군 박건하 감독은 공을 희생해준 선수들에게 돌렸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박건하 감독은 "포항과의 경기가 반전이 됐던 것 같다.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으나 내용은 좋았다. 그리고 이어진 강원전 승리가 컸다. 원정에서 역전승(2-1)을 거두면서 선수단에 자신감이 감돈 것 같다"면서 "개인적으로 인천과의 경기(10월4일)가 분수령이라 생각했다. 최근 인천의 전력이 확 달라졌고 인천 홈에서의 경기라 쉽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잘 극복(1-0 승)해줬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담담하게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다'고 말했으나 적재적소, 필요한 손이 닿았던 결과다. 그는 "처음 팀에 가보니 선수들이 열심히는 뛰는데 뭔가 헛도는 느낌이 있었다. 부담도 많이 갖는 것 같더라. 큰 변화는 꾀할 수 없는 시기였기에 임팩트 있는 훈련과 선수들과의 미팅을 통해 흐름을 바꾸고자 했다"고 노력을 설명했다. 적절한 판단도 있었다.

득점포가 침묵해 출전이 들쑥날쑥하던 지난해 득점왕 타가트는 FC서울과의 중요한 라이벌전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면서 5년5개월만의 슈퍼매치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약관의 젊은 피 김태환은 인천과의 중요한 승부에서 선발로 출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팀에 연승을 안겼다.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김태환은, 옷깃을 세우는 세리머니로 더 큰 화제가 됐다.

박 감독은 "밖에서 경기를 지켜봤을 때도, 타가트는 골이 터지지 않더라도 경기에 계속 출전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믿음에 부합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이어 김태환은 "사실 골을 기대했던 선수는 아니다. 그렇게 깜짝 활약을 하는 선수가 나와야 팀이 흥이 나는데 그 역할을 해준 것 같아 고맙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선수는, 뛰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난 염기훈이었다.

수원의 상징적인 선수인 염기훈은, 외려 박 감독 부임 후 출전시간이 줄고 있다. 서울과의 슈퍼매치 때는 벤치만 달궜고 인천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로 투입됐다. 자존심이 퍽 상할 법한 일이지만, 염기훈은 외려 라인 밖에서 열심히 박수치며 후배들을 독려했다.

박건하 감독은 "염기훈에게 가장 미안하고 고맙다. 기량은 두말 할 것 없으나 아무래도 체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B그룹이 워낙 빡빡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경기 투입이 여의치 않았는데 잘 이해해줬다"고 말한 뒤 "나도 선수를 해봐서 안다. 벤치에 있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안다. 기훈이 정도 되는 선수가 그 상황을 이해하고 팀을 위해 희생해주니 내가 너무 고맙다"고 거듭 미안함을 전했다. 잘 되고 있는 수원의 단면이다.

3연승으로 불을 끈 수원은 A매치 브레이크로 인해 잠시 숨을 돌릴 시간까지 얻었다. 심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으나, 박 감독은 단호했다.

박건하 감독은 "연승을 하다 보니 선수들도 이제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주위에서도 이제 큰 고비는 넘긴 것 아니냐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면서 "끝까지 매 경기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 다시 수원다움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