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NO.12' 이영표, "선수로선 80점이었지만…"

(서울=뉴스1) 나연준 기자 = "많은 사람들과 같이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기억해 달라"

'초롱이' 이영표(36)가 1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27년간의 축구 인생을 마무리했다.

이영표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와 준비해온 은퇴사를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영표는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 깊은 좌절과 약간의 성공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이 지나 마지막으로 인사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에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한 번은 축구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2000년대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수비 불안이었고 저는 그 중심에 있었다"며 "제 실수를 동료들이 덮어쓴 적도 있었고 정정당당히 마주해야할 패배 앞에서 비겁한 변명과 핑계로 대신한 적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7년간 치열하게 그라운드를 내달리면서 그라운드 밖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며 "곰곰이 생각할수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도움만 받았을 뿐 나는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무엇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127경기는 제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며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축구, 축구는 내가 즐거운 게 우선이라는 1인칭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태극기 앞에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 진정한 축구의 즐거움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영표는 "그라운드 안에서 축구의 즐거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지난 27년간 스스로에게 충분히 정직했기에 아쉬움은 없다"며 마무리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이영표는 "은퇴하면 사람들이 저를 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며 "기억해준다면 혼자 즐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같이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영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였지만 스스로에게 축구선수로서 80점이었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그는 "선수로는 80점이다. 하지만 축구를 즐겼다는 점에서는 100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아직도 좋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시즌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에서 이영표는 32경기 중 30경기에 출전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영표는 "은퇴시기에 대해서는 6년 전부터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왜 은퇴 하느냐고 하지만 체력적인 문제가 있어서 은퇴를 하는 것이다"며 "제가 체력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동료들은 모른다. 옆에 동료가 느꼈을 때는 늦었다. 스스로 체력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동료들이 눈치 채지 못했을 때 은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프로 및 국가대표로 수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이영표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지 않았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이영표는 국가대표로서 치렀던 한일전을 꼽았다.

이영표는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요코하마에서 일본에 2-0으로 승리했다. 5-0으로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한일전 7경기에서 3승 4무를 거뒀는데 4무가 아쉽다. 7승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축구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던 순간으로 이영표는 2002 한일월드컵과 이후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했던 시기라고 밝혔다.

이영표는 2002 한일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현 대표팀에 대한 높은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수비철학을 보면서 한국 축구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아직도 '제2의 이영표'를 찾지 못했다. 왼쪽 윙백 포지션은 박주호(마인츠),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 등 여러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영표는 "대부분의 얘기가 선수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많다. 하지만 저는 왼쪽 윙백에 유독 좋은 선수가 많아서 선택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영표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좋은 축구선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먼저 된다면 좋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훨씬 더 쉽다"고 충고했다.

대한축구협회는 15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이영표의 은퇴식 '아듀 NO.12'를 개최한다.

yjr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