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벨기에 국영방송, '비극의 한국전' 1998월드컵 회상
간판스타 시포와 감독 간의 갈등 비화 소개도
한국의 2014월드컵 H조 마지막 경기(6월 27일 오전 5시) 상대는 벨기에다. 양국은 1998월드컵 E조에서도 최종전에서 만났다.
당시 한국은 2패 1득점 8실점과 대회 도중 차범근(61·SBS 해설위원) 감독 경질이라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탈락이 확정됐음에도 개의치 않고 수비수 이임생(43·홈 유나이티드 감독)의 '붕대 투혼'으로 대표되는 강한 정신력으로 2무 2득점 2실점의 벨기에와 1-1로 비기면서 '고춧가루'를 단단히 뿌렸다.
벨기에 프랑스어 국영방송 'RTBF'는 23일 '월드컵 98, 3무의 탈락'이라는 제목으로 자국대표팀의 1998월드컵 본선을 돌아봤다. 최종전에 대해 '한국을 상대로 새로운 환멸을 느끼다'는 소제목을 붙인 것에서 당시 벨기에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다.
'RTBF'는 "경기가 시작되고 임무는 명확했다. 벨기에는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 2골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다"고 한국전 상황을 설명했다. 멕시코와의 2차전은 2-2 무승부였고 멕시코는 1승 2무 7득점 5실점 득실차 +2로 E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승점·득실차·상대전적이 같으면 다득점이 그다음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벨기에는 3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다.
이어서 "경기 시작 16분 만에 공격수 뤽 닐리스(47)가 선제골을 넣고 전반을 마쳤으나 2번째 골은 없었다"고 전한 'RTBF'는 "1시간 정도가 지나고 조르주 리켄스(65·벨기에) 감독은 미드필더 엔초 시포(48)를 빼고 프랑키 판 데르 엘스트(53)를 투입하려 했다. 감독의 판단은 시포의 짜증을 유발했고 교체를 거부했음에도 감독에 의해 강제로 나오게 되자 몹시 화가 났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현역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던 시포는 1986월드컵 '베스트 영플레이어'이자 1984년 벨기에 네덜란드어 일간지 '넷 라츠테 니우스' 선정 '벨기에 1부리그 올해의 선수'와 1991년 벨기에축구협회 선정 '벨기에프로축구 올해의 선수' 경력을 자랑하는 당대 벨기에 최고 스타였다.
다만 판 데르 엘스트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한계에도 1990·1996년 '넷 라츠테 니우스' 선정 '벨기에 1부리그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으며 2004년에는 국제축구연맹 100주년 기념으로 축구황제 펠레(74·브라질)가 선정한 위대한 125인에 포함된 선수다.
물론 1998월드컵 당시 판 데르 엘스트는 37세의 노장이었고 시포는 32세로 전성기의 마지막 무렵이라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다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타공인의 '플레이메이커' 시포를 빼고 노장 '수비형 미드필더' 판 데르 엘스트를 투입하는 결정은 'RTBF'가 '의외의 판단'이라고 할만하다. 시포의 교체는 후반 20분 단행됐다.
'RTBF'는 "감독과의 충돌로 결국 전 인터 밀란(이탈리아) 출신 플레이메이커 시포는 국가대표팀 경력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포는 1987/88시즌 인터 밀란에서 44경기 5골(리그 28경기 4골)을 기록했다. 국가대표로는 1984~1998년까지 A매치 84경기에 나와 18골을 넣었으며 벨기에 월드컵 최고 성적인 1986년 본선 4위를 함께했다.
"유상철(43·울산대학교 감독)과 한국은 동점을 낚아챘다. 결국, 벨기에는 어떤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고 1-1 무승부라는 결말을 밝힌 'RTBF'는 "그러나 1패도 없었기에 고개를 다소 들 수는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주장 완장을 차고 수비수로 출전한 유상철은 후반 26분, 그러니까 시포가 나가고 6분 만에 동점을 만들었다. 벨기에는 3무 3득점 3실점으로 E조 3위를 기록했다.
1번도 지지 않았음에도 16강에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간판스타가 감독과 불미스러운 마찰로 국가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RTBF'가 '환멸'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할법하다. 16년 만에 다시 성사된 한국과의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은 과연 벨기에한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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