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캡틴' 페레즈 "3천만 국민 기대 짊어진 압박감"

결승서 미국 잡고 WBC 우승…"월드시리즈 7차전 이긴 기분"
'패장' 데로사 감독 "변명 않겠다…우리가 힘쓰지 못했다"

미국을 꺾고 2026 WBC에서 우승한 베네수엘라. ⓒ AFP=뉴스1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미국과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승리한 베네수엘라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기쁨을 표출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아도 조국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향한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했다.

베네수엘라는 1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대회 결승 미국과의 경기에서 3-2로 이겨 우승했다.

단순한 '스포츠 게임'의 승리는 아니었다. 이날 경기는 '마두로 더비'로 불리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는 군사작전을 승인하며 양국의 관계가 악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선수들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국민들의 염원은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높은 압박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베네수엘라 주장 살바도르 페레즈는 2013, 2017, 2023년에 이어 이번이 4번째 WBC였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등 '세계 최고 포수'로 명성을 떨친 페레즈도 이날 경기의 부담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선수들이 18일(한국시간) 2026 WBC 우승을 차지한 뒤 샴페인 파티를 벌이고 있다. ⓒ AFP=뉴스1

페레즈는 "베네수엘라 3000만 국민들을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면서 "엄청난 부담감 속에 경기했다. 마치 3000만 국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마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기분이다. 그것도 7차전에서 승리한 것 같은 느낌"이라며 "믿을 수 없고, 정말 행복하다. 우리가 해냈다. 이제 은퇴해도 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대회 내내 베네수엘라의 중심 타선에서 활약하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마이켈 가르시아는 "이 팀의 일원이 된 것이 자랑스럽고, 조국에 있는 3000만 베네수엘라 국민을 대표한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앞으로 야구 대표팀 순위를 매긴다면, 베네수엘라를 1위로 해달라"고 말했다.

반면 결승에서 패한 미국은 여러모로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부분을 제외해도, '야구 종주국'의 위상을 지키지 못한 굴욕적 패배였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 패해 2026 WBC 준우승에 그친 미국. ⓒ AFP=뉴스1

더구나 홈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열렸고, 대회 전 '대진표 논란', 도미니카공화국과의 4강전에선 '판정 논란'까지 겪으며 결승에 올랐음에도 우승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조별리그에서 '경우의 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탈락 위기까지 맞았던 마크 데로사 미국 감독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데로사 감독은 "변명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공격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면서 "베네수엘라가 정말 대단하다. 바로 전날 이탈리아전을 치른 뒤 휴식도 없이 다시 마운드에 오른 투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다만 대회 일정에 대한 아쉬움은 남겼다. 그는 "선수들이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에 대회가 열린다"면서 "일정이 바뀐다면 투수들의 컨디션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starbury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