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영광' 재현 못 했지만…한국 양궁, 세계 정상급 기량 재확인

리커브 전종목 입상…"경쟁국 성장, '압도' 쉽지 않아"
내년 AG·2028 올림픽 자양분 기대…'銅 1' 컴파운드는 아쉬워

10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남자 단체전 결승 시상식에서 한국 김제덕, 김우진, 이우석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2025.9.10/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광주=뉴스1) 권혁준 기자 = 1년 전 파리 올림픽 '전관왕'의 영광을 홈에서 재현하진 못했다. 비교 대상과 기대치가 워낙 높았기에 다소 아쉬울 수 있었지만, 한국 양궁은 여전히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갖췄음을 재확인했다.

2025 광주 세계 양궁 선수권이 12일 리커브 여자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8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세계 양궁 선수권은 90여년의 역사를 지닌 국제양궁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한국에서 열리는 건 2009년 울산 대회 이후 16년 만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를 수확했다. 금-은-동 순으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의 종합 순위로 전체 1위이고, 메달 수도 가장 많았다. 멕시코(금 2 동 1), 스페인(금 2)이 거세게 추격했지만 한국에는 미치지 못했다.

7개의 종목 중 6개가 '올림픽 효자종목' 리커브에서 나왔다. 남자 단체전(김우진 이우석 김제덕)과 여자 개인전(강채영)에서 금메달을 땄고, 혼성전(김우진 안산) 은메달, 남자 개인전(김제덕)·여자 단체전(강채영 안산 임시현)·여자 개인전(안산)에서 동메달이 나왔다.

강채영이 12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여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은메달은 중국 주징이, 동메달 한국 안산이 차지했다. 2025.9.12/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싹쓸이하는 등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

더구나 혼성전에선 세계선수권 '불패' 행진이 깨졌다. 한국은 세계선수권에 혼성전이 도입된 2011년 이후 2023년까지 이 종목 7연패를 기록 중이었는데, 이번 은메달로 8연패가 무산됐다.

또 올림픽 10연패에 빛나는 여자 단체전도 준결승에서 대만에 덜미를 잡히며 동메달에 그쳤다. 여자 대표팀의 면면은 어느 때보다 화려했기에 특히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전 종목 입상'이라는 타이틀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다. 이미 수년 전부터 경쟁국들의 기량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기에, 한국 양궁이 국제대회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산(광주은행)이 12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여자 3-4위전에서 인도네시아 다이난다 초이루니사(Diananda Choirunisa)를 상대로 승리한 후 화살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2025.9.12/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앞서 대표팀을 경험한 '레전드' 선배들도 비슷한 견해였다.

이번 대회에서 해설을 맡은 기보배 광주여대 교수는 "절대로 아쉬운 성적이 아니다. 작년 파리 올림픽이 너무 잘해서 비교될 뿐"이라면서 "오히려 모든 종목에서 입상한 것을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기 교수는 "내가 선수일 때도 그랬지만, 경쟁국과 한국의 기량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면서 "남자부는 유럽, 여자부는 아시아권의 강세가 세지면서 한국도 언제든 패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연습뿐이다. 꾸준한 기량과 실수를 하지 않는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대회에선 충분히 잘 해줬다"고 평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오진혁 현대제철 코치도 "모든 메이저대회에서 전관왕을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며 "기량이 상향 평준화된 현시점에선 실력 외에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하기에 '연전연승'을 기대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11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남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한국 김제덕이 동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9.11/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오 코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진 경기를 봐도, 우리가 못했다기보다는 상대가 좀 더 잘했기 때문이었다"면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냈다. 금메달을 꼭 따지 못했어도, 이번 경험이 충분히 다음 대회의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역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장혜진 MBC 해설위원도 "아무래도 작년 결과를 안고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제는 국제 무대에서 무시할 만한 상대가 없다. 기량 이외의 마인드컨트롤과 정신적인 부분의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성적을 낸 리커브와 달리 동메달 한 개에 그친 컴파운드는 아쉬웠다.

8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컴파운드 남자 개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최용희가 화살을 쏘고 있다. 2025.9.8/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컴파운드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라 그간 많은 관심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왔기에 이번 대회의 부진이 좀 더 도드라진다.

컴파운드는 2028 LA 올림픽에서 혼성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향후 정식 종목 확대 가능성도 없지 않은 만큼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다.

기보배 교수는 "컴파운드는 리커브에 비해 선수층이 너무도 얇은 편"이라며 "컴파운드 1세대에 속하는 최용희를 위협할 만한 선수가 아직도 없다는 것이 경쟁력을 말해주는 냉정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오진혁 코치도 "한국의 컴파운드 전문 선수는 10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컴파운드 강국인 인도의 경우 수만 명에 달하는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고 했다.

이어 "저변이 확대되지 않으면 경쟁력 강화는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도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생겼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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