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만 동원’ 관중은 세계 최고인데…투수는 왜 최고가 없나? [WBC 결산]

타선은 경쟁력 입증…마운드는 여전히 열세
4사구 줄었지만 피홈런 급증…구위형 투수 육성 필요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 대한민국 곽빈이 3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 후 아쉬워하고 있다. 2026.3.14 ⓒ 뉴스1 구윤성 기자

(마이애미=뉴스1) 서장원 기자 =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써낸 한국 야구 대표팀이 8강에서 '강호' 도미니카공화국에 완패하며 '세계의 벽'을 절감했다.

1라운드 통과를 넘어 내심 더 높은 곳을 바라봤던 대표팀은 이번에도 마운드에서의 약점이 두드러지며 너무나 손쉽게 상대에 승리를 내줬다. '마운드가 높아야 강팀'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달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리그 전체가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지난 14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6 WBC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0-10,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빅리거가 즐비한 상대에 밀리는 게 사실이었고, 승리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선수단 포함 대다수가 알고 있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에 앞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2026.3.14 ⓒ 뉴스1 구윤성 기자

그래도 1라운드를 극적으로 통과하면서 선수단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내부에서도 '우승 후보' 도미니카공화국을 실력으로 놀라게 해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좋은 승부가 예상됐다. 그러나 현실은 콜드게임 패배였다.

타선이 상대 마운드에 꽁꽁 묶여 힘을 쓰지 못했지만, 우리 마운드도 도미니카공화국 타선을 효율적으로 막았더라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투수들이 상대의 화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단기전으로 펼쳐지는 국제대회에선 마운드가 높은 팀이 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승 우승'을 일궈냈던 2008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4강에 올랐던 2006 WBC와 준우승을 차지한 2009 WBC 모두 상대 타선을 잠재웠던 수준 높은 마운드의 힘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마운드를 빛낸 투수들이 자리를 비운 뒤 한국 마운드의 힘은 갈수록 약해졌고, WBC의 경우 2009년 이후 3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특히 투수들이 타자들과 힘으로 붙지 않고 도망가는 피칭을 하면서 볼넷을 남발해 자멸하는 패턴은 국제대회마다 나타나는 한국의 고질병이 됐다.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 경기 시작에 앞서 류지현 감독이 그라운드에 도열해 더그아웃을 바라보고 있다. 2026.3.14 ⓒ 뉴스1 구윤성 기자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 KBO는 지난해 2월 류지현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앞선 국제대회에 코칭스태프로 참가하며 누구보다 대표팀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던 류지현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이번 WBC까지 약 1년 동안 국제 경쟁력 강화에 힘을 썼다.

지난해 11월 평가전을 기점으로 대표팀은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투타 모두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됐고, 생동감 넘치는 대표팀이 완성됐다. 류지현 감독은 "이번 대표팀이 분위기나 실력으로나 '역대 최강'"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 야구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이번 WBC에서 극적인 8강 진출 기적을 일궈냈다. 낯선 국제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타선의 힘도 기여도가 높았지만, 무엇보다 호주와 최종전에서 마운드가 상대 타선을 2실점으로 묶은 것이 주효했다. 달라진 마운드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이 마운드라는 사실은 이번 대회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타선은 확실히 국제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투수들의 경우 보완해야 할 점이 뚜렷했다. 예컨대 4사구는 줄었지만, 반대로 피홈런이 급증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 5회말 마운드에 오른 조병현이 역투하고 있다. ⓒ 뉴스1 구윤성 기자

구위형 투수의 부족이 가져온 현상이다. 이번 WBC에 참가한 20개국 중 한국 투수들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은 17위에 그쳤다. 구속이 완성형 투수로 가는 절대 조건은 아니지만, 1200만 관중을 동원하는 국내 프로스포츠 1위 한국 야구에서 이런 순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구속이 뒷받침돼야 제구력을 요구하는 변화구가 더욱 빛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류지현 감독은 8강 탈락 후 기자회견에서 "국제대회에 나오면 우리나라 투수들의 구속이 확실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학생 야구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서 좀 더 경쟁력 있는 대표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구속과 구위로 상대를 찍어 누를 수 있는 파워 피처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이번 대회는 실패가 아니다. 성과와 과제를 함께 남긴, 한국 야구의 전환점이다. KBO와 리그 구성원이 합심해 냉정하고 철저하게 문제점을 진단하고, 바로 개선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야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흥행에 취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다.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superpow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