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기업가 정신, 그리고 허구연 KBO 총재
(서울=뉴스1) 허남영 스포츠부 부국장 =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 승산마을이 있다. 지금은 현지인이나 외지인들에게 ‘승산부자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마을 이름이 이렇게 불리게 된 배경에는 대한민국 경제의 초석을 닦은 대표적인 1세대 기업가들이 이곳 출신이어서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금성(현 LG와 GS그룹 전신) 구인회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이 승산마을에서 태어났거나 성장기를 보내면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은 192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이곳 지수초등학교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이다. 학창 시절 이 회장과 구 회장이 각각 심은 소나무가 언제부턴가 뿌리가 합쳐져 한 그루의 소나무로 자랐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학교는 폐교했지만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나무를 ‘부자 나무’ 또는 ‘재벌송’으로 부른다.
최근 승산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폐교된 지수초등학교는 ‘K-기업가정신센터’로 바뀌어 1세대 창업주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미래 한국경제를 이끌 기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센터 내 전시관에서 한국경영학회가 승산마을에서 발현한 기업가 정신을 한 줄로 요약한 글귀가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작은 이윤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으로 의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
마을 한 켠에는 재벌가 생가들이 잘 복원돼 있고 일부는 복원과 수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구인회 회장의 생가와 처가는 물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허준구 GS그룹 명예회장, 구태회 LS그룹 창업주,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생가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허구연 생가’에서 발길을 멈췄다.
허구연? 맞다, 야구해설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인 그 분. 그런데 이 분이 기업인이었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왜 이 분의 생가까지 복원하게 된 걸까. 승산부자마을의 컨셉과 야구인 허구연 총재 사이에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KBO 수장으로 물 밑에서 열심히 활동 중인 허구연 총재가 근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최근 끝난 국회 국정감사에서다. 법인카드를 너무 헤프게 쓴 게 문제가 됐다. 지적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1개월 동안 스타벅스 선불카드 구입에 2310만원, 특정 제과점에서 쿠키 세트 사는데 548만원을 결제했다는데 문제는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잦은 해외출장과 재벌급 수준의 출장비 지출도 도마에 올랐다. 허 총재는 2022년 3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21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는데, 이는 재임기간 10번도 채 되지 않았던 전임 총재들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난다. 전임 총재들은 일을 안 했고, 허 총재는 열심히 일하다 보니 출장 횟수에 차이가 난다는 설명은 왠지 궁색해 보인다. 더구나 해외 출장 때마다 1박 숙박비가 140만원에 달하는 호텔에 묵고, 기사 딸린 캐딜락 이용료로 매번 수천만원을 썼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KBO는 매년 수백억원의 국비를 지원받는 비영리 스포츠단체다. 이번 국감을 통해 알게 된 더 놀라운 사실은 KBO 총재의 출장비엔 상한이 없다는 것이다. 아예 규정 자체가 없다. 이를 견제할 감사실 같은 감시 기구조차 없다. 마음만 먹으면 총재가 말아먹어도 할 말이 없는 시스템이다. 논란 직후 KBO 대응도 아쉽다. 국감자료 제출 거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허 총재는 국감에 출석조차 하지 않았고, 관계자 입을 통해 나온 “국비에서 쓴 건 없다"는 해명이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프로야구 관중은 지난해 10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1200만명을 넘어서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KBO가 이번 논란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으면 한다. 작은 구멍에서 생긴 오해와 불신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재발 방지와 확실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승산마을에서 꽃피운 K-기업가정신의 뿌리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위하는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에 있다고 한다. 이곳 출신 허구연 총재가 한 번쯤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nyhur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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